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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참과 풍수사상 과학적인가?, 서울은 명당

by 빛의 라 2024. 8. 19.

2024년 2월에 개봉한 한국 영화 '파묘'의 주제는 풍수설이다. 풍수는 한자어로 바람과 물 즉 자연을 의미한다. 거주지나 묘지를 자연의 어느 위치에 자리잡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세가 정해진다는 설이다. 토속 신앙이나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현재도 이 사상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에게 이처럼 오래도록 신봉되고 있는 풍수설에 관해 알아보자.

 

도참과 풍수사상

 

'도참'이란 미래 사실에 대한 예언이나 암시로서, 흔히 천문, 역학, 풍수 사상 등과 결합되어 전개되었다. 중국 상고 시대 복희 때에 용마가 등에 지고 나왔다고 하는 하도( 河圖 :하천의 형세를 그린 그림)의 '도'와 '참(예언)'이 합쳐서 이루어진 말이다.  중국 주나라 ( BC 1046~BC 771)말기에 천하가 오랜시간 혼란에 빠지게 되니.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며 살길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이와 같은 민중의 욕구에 호응하여 '도참사상'이 일어났고 음양오행설, 천인감응설, 풍수지리설 등을 혼합하여 하늘의 변화와 땅의 다름을 설명하는 사상이다.

'풍수설'은 '바람과 물'을 이르는 말이다. 즉 산세나 땅의 형세, 물의 형세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 좋은 일과 나쁜 일 혹은 운, 복을 받거나 사고를 당하는 것)을 연결하는 사상이다. 이 사상 역시 중국 주나라 ( BC 1046~BC 771) 에 등장했었고 이론으로 정립된 시기는 당나라 곽박의 <금낭경>에서 구체화되었다. 한국풍수의 원조는 신라말기의 승려 '도선국사(827~893) '라고 할 수 있다. 도선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은 고려와 조선에 미친 영향이 크다. 도선은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918~ 843)의 탄생과 그가 고려를 건설할 것을 예언했으며, 왕건의 아버지에게 집터를 정해주었다고 전해진다.

 

풍수와 도참이 결합하면 풍수도참이 된다. 전통적인 풍수사상과 예언화된 풍수도참은 본래 명확히 구분된다. 그 구분의 핵심은 '논리적 근거 제시'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풍수사상은 많은 고전서와 이론가들이 구축한 풍수논리가 축적되어 있다. 반면에 풍수도참은 풍수논리를 차용하되, 일반적인 풍수논리를 뛰어넘어 흔히 초논리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풍수와 도참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전통적인 풍수논리 자체가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만약 풍수논리의 구성에서 기본 전제가 되는 '지기(땅의 형세)' '동기감응론'과 같은 것을 초논리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면, 풍수와 도참의 차이는 미미한 정도다. '동기감응론'이란 사람의 몸, 뼈, 세포에 특정한 기운이 있고 이것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텔레파시처럼 서로 연결되어 운이나 기운 같은 것을 주고받는다는 이론이다. 구체적으로 돌아가신 조상을 매장할 때 뼈가 산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동이 동일 유전자를 가진 후손에게 전달돼 복 혹은 재앙을 준다는 이론이다. 

 

 

풍수는 대상에 따라 죽은 자가 있는 곳을 대상으로 하는 '음택풍수'와 살아있는 자가 있는 곳을 대상으로 하는 '양택풍수'로 대별된다. '음택풍수'는 죽어서 묻힐 때 무덤 자리를 따져보고, 좋은 자리에 묻어 그 후손이 이익을 받도록 연구하는 풍수다. '양택풍수'는 집을 지을 위치나 방향 등을 따져 좋은 자리를 선점함으로써 거주자와 후손들이 좋은 기운을 받도록 연구하는 것이다. 다시 '양택풍수'는 개인의 주거지, 마을 주거지, 도읍지 등으로 그 범위가 확산된다.

산과 물의 형세, 동서남북의 방위 등을 고려해 입지가 좋은 장소를 '명당'이라고 부른다. 보통 뒤편에는 산, 앞에는 물을 두는 '배산임수'의 형지가 명당이다.

 

 

풍수설은 과학적인가

 

풍수설은 기본적으로 기복신앙과 토속신앙에 근간한 애니미즘과 무속, 점복학을 바탕으로 하지만 어느 정도 과학적인 원리가 포함된다. 실제로 북반구 기준 북쪽에 산을 두고 남쪽에 물을 두는 '배산임수'자체는 실제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북반구를 기준으로 햇볕이 잘 들어 일조량이 많아 따뜻하고 겨울의 북풍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남동풍이 불어 시원하다. 게다가 좋은 경치가 보장되며, 앞의 강에서 물을 쉽게 길어 올 수 있고, 뒷산에서는 땔감과 건축재료를 구할 수 있어,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이만한 곳이 없다. 또한 주변의 산과 앞의 강이 자연적 방어벽이 되기 때문에, 적을 막는 데도 용이하다. 

특히 한반도에서 유독 '양택풍수'를 중요시한 이유가 산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산을 북쪽에 끼지 않으면 살인적인 북풍을 버틸 방도가 없거니와 도시 및 거주지를 분지나 구릉지대로 몰아넣어야 결과적으로 평야 지대의 농경지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풍수설'을 민속신앙이나 미신으로 여기는 듯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나 조상의 묘는 명당에 모시려고 애를 쓴다. 관공서나 건물의 입주 등 실생활에서도 이 사상에 따르려고 한다. 국립묘지, 박물관, 시청과 도청 급의 건물들은 모두 풍수를 고려하여 위치를 선점한다고 한다.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에도 풍수설이 고려되었다. 아직도 민간에서는 일이 풀리지 않고 나쁜 운이 들었다고 판단하면 이사를 하기도 한다.

 

 

서울은 명당

 

어느 사상이나 다 비슷하지만, 특히 풍수는 정치적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국왕과 지배층은 종종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풍수논리를 동원하였다. 이 점은 국가적 차원에서 풍수를 활용한 고려시대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조선시대에도 왕릉의 조성을 둘러싸고 상대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하여 풍수논쟁을 일으킴으로써 국가를 종종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곤 하였다.

조선초,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수도를 옮긴 것은 고려시대 이래 풍수도참의 완결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한양의 선택은 옛 고려의 근거지에서 탈피한다는 정치적 조건에다, 바닷길 외에 강과 육로를 통한 접근 또한 한반도에서 가장 용이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풍수적으로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한양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대간 산줄기가 뻗어 내려와 그 정기가 봉우리로 뭉친 북한산을 중심으로 왼쪽에 낙산이 동쪽으로 뻗었고, 오른쪽에는 인왕산이 서쪽으로 뻗어 있다. 남쪽에는 목멱산(현재의 남산)이 있다. 한강이 남쪽과 서쪽을 둘러 흐르며, 관악산이 북한산에 조회하는 듯하여 고려 초부터 도선대사에 의해 '명당'으로 지목되어 왔다. 한양 이전에 '무학대사'가 정했다고 하는 설과 '정도전'과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진다. 누가 이곳을 '명당'으로 결정하고 천도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많은 유래가 존재할 만큼 서울 지역은 도읍지로 정할 만한 곳이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풍수설에 의하면  '명당'자리는 후손이 잘 된다는 믿음과 기원을 담고 있었다. 이를 믿은 선조들은 고르고 골라 지금의 서울을 한 나라의 수도로 삼았다. '명당'이기 때문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조상들이 말씀하셨고 현재 우리가 또 그렇게 믿고 말한다면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가 번창할 것이다. 과학으로도 '명당'임이 입증되었고 속담은 삶의 지혜가 깃든 진실임을 감안한다면 서울의 발전을 예상할 수 있겠다. 한국 국민으로서 '명당'서울의 발전적 미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