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행위는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사실 독서는 인류의 선천적 능력이 아니다. 어느 세대나 태어나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류는 표상화 작업을 통해 대뇌 발달을 이루어, 후대로 하여금 독서할 수 있는 채비를 시켜주었다.
독서 선천적 능력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DNA에 저장된 선천적 능력이 아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제리 코인 교수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인의 모습으로 산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정말 잠깐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과정에서 갈라진 것은 600만~7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인간이 농경생활을 토대로 도시를 탄생시켜 문명을 가진 시간은 6천 년 전부터다. 한 마디로, 우리 종인 호모사피엔스 출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1년으로 표현한다면,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시간은 365일 중 고작 2시간 정도다. 364일 22시간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사냥, 짝짓기에 전념해 왔다. 우리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즉, 600만~ 700만 년간 유전자에 새겨진 정보는 원뇌가 관장하는 생존을 위한 정보들이다. 생존 정보 외에 독서 행위만을 고유하게 관장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말이다. 유전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시각, 청각이나 언어 구성 부품과 달리, 독서는 그 능력을 자손에게 전달해 주는 직접적 유전 프로그램이 없다.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소리에 관한 한 우리 뇌에는 이미 선이 연결된 상태다. 반면에 문자는 고생스럽게 추가 조립해야 하는 옵션 액세서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독서만 전담하는 고유한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전 세대의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능력을 배우기 위해 시각 및 언어 능력을 위해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구조를 뇌가 새로 연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프로세스를 학습하기 위해 우리는 수백 단어, 수천 개념, 그리고 수만의 청각적, 시각적 지각에 대해 수백 가지 학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독서하는 행위는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표상화
표상화의 뜻은 추상적이거나 드러나지 아니한 것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내는 행위 혹은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의 인류의 문자 역사 연구는 25센트짜리 동전 크기의 작은 진흙 조각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겉을 감싸는 진흙 위에 안에 든 내용물을 알리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기원전 8000년에서 40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여러 곳에서 사용된 일종의 회계 시스템으로 밝혀졌다. 물표는 양, 염소, 포도주 등 사고 판 물건의 숫자를 기록하던 것이다. 이러한 물표는 조상들의 지적 능력을 촉진했다. 처음으로 양이나 염소, 포도주가 눈앞에 없어도 '재고 stock'를 헤아리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회계 시스템은 물표 외에도 수메르 문명의 쐐기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있으며 밧줄의 매듭으로 표시하는 잉카 문명의 키푸도 있다. 이러한 표상 부호들은 인류에게 새로운 인지적 역량과 함께 저장된 데이터의 시조 격인 영구 기록이 생기도록 하였다. 프랑스나 스페인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와 더불어 물표는 일종의 상징적 표상을 사용하는 새로운 능력이 인간에게 생겼음을 의미한다. 부호나 기호로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상징화하게 된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인지과학자 스티븐 코슬린은 실험을 통해 우리 뇌가 가진 표상화 능력을 검증했다. 브래인 스캐너 안에서 성인에게 어떤 단어를 상상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상만으로도 시각피질 상의 특정 뉴런이 활성화되었다. 표상화는 문자, 문자의 패턴, 단어를 인지하는데 필요한 뉴런의 경로가 자동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은 안구에 있는 망막에서 외부의 상을 조직하고, 그 상들은 뇌 뒤편의 후두엽의 특화된 위치를 활성화시키며, 뇌조직에서 지극히 중요한 또 한 가지 측면 덕분이다. 그 측면이란 바로 특화된 부위에서 정보의 표상화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문자와 문자 패턴을 인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세포망은 '동시발화' 하면서 시각 정보에 대한 표상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낸다. 이 표상화 능력을 기초로 인간은 모든 외부 정보의 패턴을 거의 자동적으로 인지하는 진화론적 역량이 형성되었다.
대뇌발달
인간은 기타 영장류보다 대뇌 영역이 넓고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태어나면 눈의 망막에 있는 뉴런들이 사물을 보고 뇌 뒤쪽에 있는 후두엽 특정 세포군에 맞춰 조정된다. 안구의 망막에 비친 직선, 사선, 원 또는 원호가 후두엽의 특화된 위치를 눈 깜짝할 사이에 활성화시킨다. 프랑스 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원숭이 실험을 했다. 원숭이 앞에 바나나 두 개가 놓인 접시와 네 개가 놓인 접시를 내밀었다. 원숭이는 뇌의 후두피질 일부가 활발한 반응을 보인 뒤, 네 개짜리 접시를 잡았다. 실사 그대로의 정보는 후두부의 특정 세포군을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이 영역은 인간의 수학적 연산에 사용되는 뇌 부위 중 하나다.
그러나 물표와 같은 상징적 의미를 알려면 뇌신경세포의 활동이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증가한다. 인접부위의 뇌인 측두부, 두정부가 동원되어야 한다. 대뇌의 측두엽은 엄청난 양의 청각 및 언어 프로세스에 개입하며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단어의 의미를 이해한다. 두정엽은 공간 및 연산 기능에 참여한다. 표상화가 이루어지려면 우리 뇌는 기본적인 시각 영역을 측두엽과 두정엽에 있는 언어와 개념 체계, 그리고 연합 영역이라고 불리는 시각 및 청각 특화 부위에 연결시킨다. 조상들이 상징을 읽기 위해서는 시각적 특화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시각적 표상을 어떻게 해서든 언어 정보와 개념 정보에 연계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뇌의 뒷부분에 있는 세 개의 후엽의 접합점에 있는 '각회' 영역은 다양한 감각 정보들을 연결시키는데 아주 이상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표상화하는 과정에 각회가 활성화된다. 19세기 프랑스 신경과 전문의 조제프-쥘데즈린은 임상을 통해 '각회' 영역에 상해를 입으면 읽기와 쓰기 능력을 상실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표상화의 의미를 인지하기 위해서 이처럼 뇌의 다양한 영역이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대뇌에 포함되는 여러 영역이 발달되었다.
조상들은 점점 늘어나는 상징과 표상의 사용법을 새로운 세대에게 가르침으로써 적응 및 변화할 수 있는 뇌의 역량에 대한 지식을 후대에 전수했다. 인간의 뇌가 독서할 채비에 돌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