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는 한국의 세시풍속 중 하나로, 24 절기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양력으로는 매년 12월 21일에서 23일 사이에 해당하며, 동지 이후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 기간으로 여겨졌다. 이 글에서는 동지의 의미와 유래, 동지에 먹는 음식, 그리고 동지와 관련된 행사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동지
동지의 의미와 유래
동지는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70도 위치에 있을 때로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때이다. 동지(冬至)는 음(陰)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하고 양(陽)의 기운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인 <선명력>에도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역경>에도 복괘에 해당하는 11월을 일 년의 시작으로 삼았으니,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나라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고려의 충선왕 원년(1309년)에 와서 원나라의 '수시력'( 그레고리오역과 같음)으로 바뀔 때까지 '선명력'을 사용하였다. 이로 보아 고려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음력 1월 1일이 설날로 확정되면서 동지는 '작은설'로 인정되었다. 동지는 자연의 변화와 관련된 상징적 의미 외에도, 인간의 삶에서 불운을 막고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는 날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동지에 먹는 음식
동지의 대표적인 음식은 팥죽이다. 팥죽은 붉은팥을 삶아 만든 죽으로, 액운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먹는다.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가진 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동짓날 팥죽을 먹거나 집안 곳곳에 뿌리며 나쁜 기운을 쫓았다. 과거에는 개인과 가정, 공동체에 나쁜 일이 생기면 귀신의 훼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는 풍습이 다양하다.
귀신은 어둡고 음산한 음에서 태어나 음에서 산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음의 반대인 밝은 양을 귀신에게 대치시키면 떠나갈 것이라 믿었다. 양의 대표적인 것은 불이다. 따라서 불의 붉은빛은 귀신이 무서워하는 빛깔로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붉은 주술이 음식으로 나타난 것이 팥죽이다.
붉은 주술의 팥죽에는 또 다른 유래설이 있다.
중국 고대 풍습을 기록한 문헌 <형초세시기>에 진나라의 공공이라는 사람에게는 늘 말썽을 부려 부모 속을 썩이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 때문에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어느 동짓날, 그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아들은 그만 천연두 귀신이 되었다. 공공은 죽은 아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보고, 평소 아들이 팥죽을 싫어했음을 떠올렸다. 그래서 아들의 접근을 막고자 팥죽을 지어먹거나 집과 마음 곳곳에 뿌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가진 팥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동지의 의례적 행위 중 하나였다. 가족들은 동짓날 아침 팥죽을 끓여 먼저 조상에게 바치고, 그 후에 가족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팥죽을 먹기 전에 집안 곳곳에 팥죽을 조금씩 뿌리며 집안의 액운을 쫓는 풍습도 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동지를 기점으로 나쁜 기운을 털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동지에는 찹쌀떡을 먹는 풍습이 있다. 찹쌀떡은 끈끈한 성질로 인해 나쁜 기운을 떼어내고 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또한 찰떡을 나누어 먹으며 가족과 이웃 간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동지와 관련된 행사
동지에 대표적인 행사로는 동지 팥죽 나누기가 있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팥죽을 끓여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의 단합을 기원했다. 또한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는 풍습은 마을에서도 이어져, 동짓날 팥죽을 마울 어귀에 뿌리면서 집안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액운을 물리치고자 했다.
한국인들은 붉은색의 팥이 들어간 팥죽뿐 아니라 팥밥, 팥떡을 경사스러운 일이나 재앙이 있을 때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는 믿음과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은 상을 당한 집에 악귀가 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은 동지부적이라고 하여 뱀을 의미하는 한자어 '사'를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행사가 있었다.
동지는 또한 점치는 날로도 알려져 있다. 동지에는 날씨나 농사, 가정의 평안을 점치는 다양한 점복 행위가 이루어졌다. 특히, 동짓날 눈이 오면 풍년이 들 것이라는 속설이 있어, 눈이 오는 동지를 맞이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동지를 작은설로 여겨, 국왕과 신하들이 동지를 축하하며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는 의례가 있었다. 그리고 왕비, 빈, 궁녀들은 남녀노소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주색 저고리를 입었다.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울에는 동지 무렵 자주색 저고리를 입는 풍속이 있었으니, 이것도 동지와 붉은색의 벽사와의 상관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서당(과거 조선의 초등 교육기관)의 입학 날짜는 대개 동짓날이었다. 이는 동지 이후로 낮의 기운이 점점 커지므로 아이들이 학문을 깨우쳐 밝게 커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했다.
동지의 현대적 의미
오늘날에도 동지는 여전히 중요한 명절로 남아 있다. 비록 과거처럼 대규모의 의례나 행사는 사라졌지만, 팥죽을 먹으며 동지를 기념하는 풍습은 이어지고 있다. 가족들이 모여 팥죽을 나누어 먹거나, 팥죽을 이웃과 나누며 전통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들 수 없다면 외식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붉은색의 팥이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민간 신앙에 근거한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업을 시작하거나 건축물 공사를 시작하기 전, 팥떡을 놓고 간단한 고사를 드린다. 앞으로의 일정에 아무런 재앙도 끼어들지 않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믿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동지가 주는 의미가 예전보다 다소 축소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해를 준비하며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기원하는 마음은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결론
동지는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낸다. 동지는 음양의 조화와 자연의 주기에 따라 삶을 계획하고, 액운을 물리치며 복을 기원하는 중요한 명절이었다. 팥죽을 끓여 먹으며 가족과 함께 나누는 의식은 동지의 대표적인 풍습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동지는 단순히 절기를 넘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전통적인 한국 문화의 중요한 일환이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한국인의 삶 속에서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