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성 정체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흥미롭다. '킬미 힐미(Kill me, heal me)'의 주인공 도현 역시 7개의 인격을 가졌다. 드라마는 다중인격의 주요 증상과 발병 원인, 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고충을 잘 담아냈다. 해리성 정체장애와 원인, 치료에 대해 알아보고 이러한 소재의 작품이 생산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드라마 '킬미 힐미'의 도현
드라마 '킬미 힐미(Kill me, heal me)'는 MBC에서 2015년 1월 7일~ 3월 12일까지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다중인격장애가 있는 차도현이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전개되면서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다중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게 된다. 차도현은 어릴 때 아동학대를 당했다. 차도현의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직접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처의 자녀인 '오리진'에게 폭력을 가한다. 어린 차도현은 자신의 잘못으로 대신 맞아야만 하는 오리진을 보면서 차마 아버지에게 대들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신을 탓한다.
그렇게 탄생한 인격이 '신세기'다. 가장 먼저 생긴 인격으로 분노와 폭력성을 표출하는데 인격들의 리더다. 아동 학대의 여파로 자살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안요셉', 이런 어둠의 인격을 견뎌내기 위해 반대급부적으로 생겨난 '안요나'가 탄생한다. 아동학대 이전에 아버지와의 행복한 추억을 기억하는 '페리박'도 있고 그 외에 곰인형 모습을 한 '나나'도 있다. 나나의 아버지 되는 인격인 Mr.X 그리고 본인이다.
이러한 여러 인격들이 '오리진'을 만나 상호교류하면서 차도현은 점차 다중인격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차도현의 각 인격들은 무의식 중에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의 실체임을 자각하고,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를 정상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인간에게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진심 어린 위로와 사랑이다. 자살방지 전문가들은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날 죽여달라''죽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사실은 '날 도와줘''날 살려줘'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우리의 위로와 관심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리성 정체장애
해리성 정체장애는 한 사람 안에 두 개 이상의 분리된 성격이 각각의 정체성, 특성 및 기억을 지니는 정신 의학적 장애다.
다중인격장애라고도 하며, 예전에는 빙의라고도 하였다. 이 병명은 1980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100여 년 전부터 의학계에 알려져 왔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이중인격이고, 세 개부터 수십 개까지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중인격은 실제로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신 상태의 일부분들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다. 의학계는 이에 따라 1994년 다중인격장애라는 병명을 '해리성 정체장애'로 변경하였다.
증세는 특정한 인격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할 동안 경험한 것에 대해 다른 인격은 전혀 알지 못하며, 그러한 인격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여러 성격 중 한두 인격이 다른 성격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각각의 인격은 서로 다른 취향과 나이, 특징을 보이며, 드물게는 환자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증세를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의 증세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도 있다.
증상이 다른 뇌질환 장애와 달리 특이하고 극적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고전 작품으로는 널리 알려진 <지킬 앤 하이드>가 있고 이후로 <프라이멀 피어><23 아이덴티티> 등의 영화가 있다. 이 장애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투쟁하고 서로 비난한다. 김한규 전문의는 "각각이 이름, 경험, 정체감 등을 갖고 번갈아 지배권을 갖기 위해 갈등하고 서로를 부정한다"라고 하였다.
원인
원인은 유년시절에 받은 육체적 또는 성적 학대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끔찍한 사고의 목격 등 정신적 외상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환자의 95~100%가 어린 시절에 근친상간이나 학대를 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심한 학대나 정신적 외상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질환자들의 숨겨진 성격은 특히 분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서정석 교수는 "폭력적이고 사악한 내면의 캐릭터가 분출될 가능성 높다는 것이 문제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살인이나 폭력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 등에서는 연쇄 살인범 등을 다중인격장애자로 여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치료
이들에게는 오랜 치료기간 동안 여러 진단이 내려지는데, 해리성정체장애로 확진되기까지 평균 7년이 걸린다고 한다. 현재는 최면을 통한 진단이 가장 신뢰 있고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면은 존재하는 다양한 인격들을 불러내고, 한 인격이 다른 인격을 점차 알게 하며, 이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촉진시키는 기술을 선택하여 궁극적으로 부정적 인격의 파괴적 요소들을 조절하고 방어하는 인격으로 융합시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담자의 마음속 고통을 끌어내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신역동적 정신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복종적으로 행동해 왔거나, 주요 타인의 거절과 인정받지 못함 등의 부정적 반응을 당했을 때의 고통에 과도하게 예민했던 부분 등 과거에 내담자가 경험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받고 있는 취약한 마음의 부분에 대해서 내담자 스스로 알아차리고 이를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상담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 외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의 정신약물치료를 할 수 있으며 전기경련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총평
해리성 정체장애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흥미롭다. 그 이유는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끈다. 그래서 이 소재의 작품들은 주제와 형식을 달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해리성 정체장애는 여타 해리성 장애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개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극단적 방어기제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이런 작품들은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개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의 방증인데, 단순히 영화와 드라마로 소비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세태에 대해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각본가 '아비카 골즈먼'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 정신건강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동물원에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정상인 관객들이 함께 극장에 가서 스크린 속의 정신질환자를 바라보게 되니까요. 그러나 정신질환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은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만약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