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멱살 한 번 잡힙시다'의 심성 여린 모수린은 고등학교 동성 친구에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안타까운 것은 소시오패스 성향의 친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어, 이용을 당해 결국 교도소에 가게 되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스라이팅 범죄가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지는 이유다. 가스라이팅의 유래와 작용, 대처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멱살 한 번 잡힙시다' 모수린
KBS2에서 2024년 3월 18일부터 5월 07일까지 방영된 드라마 '멱살 한 번 잡힙시다'는 나쁜 놈들 멱살 잡는 기자 서정원과 나쁜 놈들 수갑 채우는 강력팀 형사 김태현이 살인사건들을 함께 추적하면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지는 멜로 추적 스릴러다. 공장 방화사건과 세 건의 살인 사건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의 그물망에 빈틈없이 짜인 각본임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시청자는 형사와 함께 흥미롭게 범인을 지목해 나가는데,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많아 쉽지 않다.
극 중 검사 모형택의 딸인 모수린은 고등학교 때, 친한 동성 친구 유윤영과 함께 공장에 방화를 한다. 어린 시절의 불장난이라지만 그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한다. 물론 주도적으로 방화를 저지른 사람은 소시오패스 성향의 유윤영이지만, 유윤영과 친하게 지낸 모슬린은 그것이 범죄인지 모른다. 설령 심성이 여린 모수린이 자책감이 들었다 해도 유윤영은 둘만의 비밀을 강조하며 친밀의 상징으로 삼도록 유도한다. 유윤영이 방화를 한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친구인 설우재가 이나리를 좋아하자 질투로 이나리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 이나리는 방화로 사망하지는 않지만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유윤영은 자신을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고 따르는 심성 여린 모수린을 이때부터 가스라이팅한다. 방화로 둘은 더 긴밀해졌고 아버지 모형택으로부터 독립하도록 한다. 모수린은 유윤영 덕분에 지옥 같은 아버지 집에서 벗어났다고 감사해한다. 그리고 살인교사를 지시하여 살인을 저지르게 한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인 유윤영은 모수린을 가스라이팅할 뿐 아니라 항정신성 약물인 프르포플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의존력을 극대화시킨다.
유윤영이 과거 방화 사건과 살인 혐의를 받게 되자 그 혐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수린을 범인으로 만들어 결국 교도소로 보냈다. 담당 형사는 모수린에게 현실을 알려주지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그녀는 유윤영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부인한다. 결국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스라이팅 유래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이 연극은 잭이라는 남성이 자기 아내(벨라)를 억압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잭이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의 부인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이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가스등을 켜야 했는데, 이렇게 하면 가스를 나눠 쓰던 아래층의 불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의심을 살 만하다. 이 때문에 잭은 집안의 물건들을 숨기고 그때마다 부인인 벨라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몰아간다. 잭이 보석을 찾기 위해 가스등을 켤 때마다 아래층은 어두워지고, 벨라가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아내를 정신병자로까지 몰아세운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 연극은 1940년 영국에서 먼저 영화화되었고, 1944년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화 속의 잉그리드 버그만이 열연한 부인 폴라는 남편 그레고리의 교묘한 속임수로 자신이 사소한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남편의 시계를 훔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그녀는 점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어가면서 남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상태로 치닫는다.
가스라이팅 작용
사람의 뇌는 경험이나 기억도 무의식적으로 재구성한다. 가끔씩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고 믿는 사례가 많다. 가스라이팅은 이런 뇌의 기억 조직을 이용하는 것이다. 보통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가해자와 밀접한 관계로 가정, 학교, 연인, 군대, 직장 등에서 대면하게 되는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가스라이팅이 이뤄지게 된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초기에는 대화로 풀기 위해 노력한다. 아직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피해자는 가해자가 본인을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하기 시작한다. 결국 본인을 자책하는 단계로 접어들어 판단의 주도권을 가해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가해자는 가스라이팅의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피해자의 기억을 '반박'하거나 실수를 과장하고 왜곡하여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전환)하게 만든다. 또 피해자의 요구나 감정을 하찮게 여기거나 (경시), 실제로 발생한 일을 잊은 척하거나 부인하는 (망각) 행위를 지속한다. 이러한 행위가 점진적으로 이어지게 되면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지면서 가해자의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점차 낮아지며, 스스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가스라이팅에 의한 범죄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학 입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학원 원장이나 학교 교사들의 학생을 향한 성범죄, 사랑을 가장한 데이트 폭력, 각종 사기나 살인에 이르는 범죄, 혹은 사이비교주에게 집과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의 사례가 뉴스에 나온다. 이 신종 범죄는 폭행과 협박 등을 수반하지 않고 특정 대상에 대한 정서적 교란을 일으켜 범죄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사법기관은 2021년 6월부터 '가스라이팅 기반 범죄'에 형을 집행하고 있지만, 사실 적용범위가 애매하다. 어디까지를 가스라이팅으로 규정해서 입증할지, 피해자의 의사가 어떻게 배재됐는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처 방법
사실 완전한 지배복종의 관계가 아닌 경우, 조언과 가스라이팅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해 애매한 경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떤 문제 상황에 처했다면 한 사람 말만 듣지 말고 제 3자인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가스라이팅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고립된 경우다. 현대 사회에 신종 범죄라 할 수 있는 가스라이팅 범죄가 증가하는 이유를 과거 공동체 사회에서 핵개인화 시대로 옮겨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개인화되고 고립되는 상황의 사람에게 친밀하게 접촉하여 범죄를 계획하는 것이다. 반드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한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칭찬, 비난, 주장과 지원을 맹목적으로 한다면 이런 행동들이 객관적으로 나와 그 사람에게 맞는 일인가 판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판단을 믿는 것이다. 사실, 문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다. 만약 조언한 상대가 비난한다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한다. 지인들의 충고는 참고만 할 뿐, 한 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믿고 결정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