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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지속성, 단순함 추구, 자기 충족적 예언

by 빛의 라 2024. 3. 23.

보통 우리의 믿음에는 지속성이 있다. 한 번 생성되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지형태가 변하는 뇌의 수고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함도 싫어한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형성된 선입견이나 믿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화되고 자기 충족적 예언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지속하게 된다.

 

믿음의 지속성

 

어떤 사실이나 사람, 그리고 여러 종교 교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는 지속성이 있다. 한 번 형성된 믿음은 바뀌기가 어렵다. 먼저 인간이 왜 믿는지를 이해하려면 심리적 조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믿음, 그리고 믿음에 따르는 부속적인 행위( 종교예식인 리추얼일 수 있다)는 동물에서도 보인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는 쥐 한 마리를 우리에 풀어주고 한쪽 끝에 사발이 놓인 곳으로 가게 했다. 우리의 문이 열린 후 정확히 10초 후에  먹이가 사발 안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쥐가 우리의 출입문에서 사발 앞으로 오는 시간은 사실 2초밖에 되지 않아 쥐는 먹이를 기다리는 8초 동안 우연히 한쪽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거나 사발를 향해 앞뒤로 걷는 동작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특정 동작이 쥐에게 반복되면서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동작을 하다가는 먹이가 나오는 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쥐는 이러한 8초간의 동작이 끝나야 정확히 사발에 떨어진 먹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 문에 들어서면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정신분석가 파울 바츨라빅은 쥐의 행동이 미신에 바탕을 두는 인간의 강박 행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며, 이러한 강박 행위는 더 고차원적인 힘을 가라앉히거나 조정하기 위해 필요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면밀한 실험을 하면서 바츨라빅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거짓 정보가 일으키는 불쾌감은 임시적인 해명으로도 일단 완화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즉시 생겨난 또 다른 모순적인 정보들은 수정되기는커녕 그 해명을 계속 개량하고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되면 해명은 스스로 그 틈새를 메우게 된다'라고 말한다. 결국 해명은 반박될 수 없는 가설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관해 바츨라빅은 우리가 오랜 연구를 거쳐 견디기 힘들었던 불확실한 상태를 극복한 후 마침내 특정 현상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믿는 단계에 도달하면, 거기에 우리가 감정적으로 쏟아부었던 투자가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의 해명과 모순되는 분명한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사실유무를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은 신경을 자극하고 불쾌감과 불안감을 낳으며, 익숙한 인지형태와 사고형태들을 수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들은 '모든 것이 이미 과거에 존재한 적이 있었다'는 틀에 맞추어 우리의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철학자 마티아스 융은 그래서 지식을 우리의 뇌 기능이 따르는 지독하게 보수적인 원칙이라고 기술한다.

 

 

단순함 추구

 

세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듯 보이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함을 추구하고 있다.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90퍼센트 이상은 사실 우리가 그저 추측하는 것일 뿐이다고 하였다. 뇌는 우리가 이러한 추측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복잡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단순한 세계해석과 간단한 문제 해결법을 선호한다. 

인간에 비해 진화적으로 훨씬 뒤떨어진 생명체들은 자극이 있는 상태와 자극이 없는 상태만을 인지한다. 이러한 속성은 인간에게도 남아 있는 셈이다. 복잡한 설명과 단순한 설명이 존재할 때 우리는 단순한 설명을 먼저 사용한다.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 오브 오컴은 이러한 단순함의 경향을 '오컴의 면도날'로 표현했다. 특히 정확함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선택기준에 의존했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수학적으로 더 단순하며 더 우아한 해석을 선호한다.

우리 인류 조상들은 이미 오래전에 단순한 상징으로 집단의 결속을 도모했다. 사실 오늘날에도 신생국가나 신생 정치집단은 많은 비용을 들여 가장 먼저 그 단체를 응집할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들고 웅장한 기념비를 세우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나 이슬람교, 불교 등의 종교단체는 건물을 지어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상징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사람들에게 깊은 감정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집합적인 이미지가 되고, 이 이미지들은 선입견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스위스의 정신분석가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성적으로 볼 때 상징이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그것을 매도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징은 우리의 정신 구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인간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힘이다. 상징은 치명적인 피해를 겪고 난 후에야 근절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단순함을 선호하는 우리의 뇌는 개개인의 세계상을 확립할 뿐 아니라, 상징의 도구를 이용하여 인류 문화에 기여했다.

 

 

자기충족적 예언

 

인간의 뇌는 자기 충족적 예언을 한다. 다른 말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아 세공사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인 조각상을 만들어 사람처럼 사랑했는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생명을 넣어주어 진짜 여인이 된 이야기에서 따온 말이다. 교육학자들은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의 유명한 실험으로 '로젠탈 효과'라고 부른다. 로제탈은 1960년대, 한 학급에서 무작위로 뽑은 20퍼센트의 학생을 탁월한 학업발달능력을 보일 아동이라 선별하여 교사에게 알려주었다. 학기 말, 로젠탈에 의해 무작위로 뽑힌 아이들은 실제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지능지수가 높았다. 이 결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20퍼센트 학생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교사는 그 학생들에게 더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그 학생의 학업발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까닭이다. 부모에게 서툴다고 항상 꾸지람을 듣는 아이는 나중에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어떤 사람은 의사가 포기한 치유 불가능한 병을 자신만의 치료방법을 찾아 기적적으로 치료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자신의 생각 혹은 믿음이 실현되는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왜 자신의 선입견에 애착을 보이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인류학자 포커 좀머는 인간은 진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생활에 필요한 중대한 상황 속에서 즉각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구나 나이가 어리다면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 친한 사람이나 부모 혹은 동종 무리 등 믿을 수 있는 존재로부터 틀에 박힌 견해를 전습받아야 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어린 시절에 믿은 것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동기나 청소년기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관념들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변화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입견 형성은 우리에게 적응성을 가지게 되었다.

좀머는 또한 인간은 잘못된 믿음이라도 아무런 믿음이 없는 것보다는 유익하다고 말한다. 최소한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은 어떤 견해를 고수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허무맹랑할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는 느낌은 극도로 불쾌하고, 안다는 느낌은 훨씬 편안하기 때문이다. 선입견, 믿음에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 뇌가 그렇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뇌는 단순함을 좋아한다. 복잡하고 가변적인 것의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려면 그만큼 뇌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뇌는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 어떤 상황이나 계기로 생긴 선입견이나 믿음은 그래서 잘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입견과 믿음은 더욱 강화되고 자기충적적 예언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