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뇌의 신경 전달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이 혼선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이 잘 되는 경험은 감정이 덧붙여졌을 때다. 그 경험에 세세한 부분들은 정확하지 않아도 사건과 감정은 각인된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불완전한 기억을 믿지 말고 기억을 외부화하는 방법을 활용하자.
불완전한 기억
과거에 분명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도 훗날 그들의 기억은 일치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서로 옳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왜 기억은 불완전한 걸까?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처음 그것을 경험할 때 관여했던 뇌세포(뉴런)들을 다시 작동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뉴런들이 처음 사건 때처럼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기억은 생생하고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뇌세포가 현재의 뇌세포와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뉴런을 원래의 사건이 일어날 당시와 비슷하게 활성화시키는데 이는 마치 저해상도 화면과 같다.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고쳐쓰기'인 셈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나 직장에서 생활하고 퇴근하여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 잠든다. 기억을 할 때 뉴런이 연결되는데, 이때 뇌 속에 저장됐던 비슷비슷한 경험이 경쟁하는 바람에 혼합된다. 뇌가 속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질이 떨어진다.
우리가 안경이나 차 열쇠,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집 안 곳곳에 그 물건들을 두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물과 장소의 비슷함이 하나로 뭉뚱그려져서 뇌가 적절한 기억을 찾아내는데 애를 먹는 것이다. 결국 뇌의 정보 저장 용량이 제한되어 있어서라기보다는 기억 검색의 속성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기억의 재응고 과정에서 수면 부족, 주의 산만, 뇌의 외상 등도 기억을 방해하는 요소다.
기억이 잘 되는 경험
기억이 잘 되는 경험의 첫 번째 특징은 그 경험이 특이하고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 특별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경험에 대한 기억은 뇌의 기억 저장고에서 소환될 때 다른 비슷한 경험들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항목들이 따라붙어 혼선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억의 용이성은 사건의 독특한 정도에 정비례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랑하는 아이의 출생일, 첫사랑, 결혼 날짜,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을 쉽게 기억하는 것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이러한 기억력이 유효했던 까닭은 주변 세상의 변화를 기억하고 있어야 그에 따른 성공적 생존법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달라진 환경엔 기존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 특징은 감정과 연관된 경험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감정이 개입된 중요한 사건이라면 역시 생존을 위해 기억을 해 두었다. 포악한 포식자를 대면했거나 어떤 구역에 혼자 갔을 때의 두려움, 새로 찾아낸 샘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상한 음식을 먹고 몸에 탈이 나서 아팠던 모든 감정이 포함된다.
감정이 개입된 사건은 즉시 뇌 화학물질이 꼬리표로 붙어 접근과 검색이 용이한 특별한 신경 상태가 된다. 감정이 강하게 일어날 때, 우리의 뇌는 그 순간의 정보를 기억하도록 만드는 화학 물질을 생성한다. 그렇게 우리의 선조들이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기억법은 우리에게 유전되었다.
하지만 감정적 꼬리표는 기억 검색을 더 빠르고 쉽게 해 주나, 역시 완벽하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경과하여 자세하고 사소한 정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감정과 함께했던 그 사건은 끝까지 남는다.
기억의 외부화
기억의 외부화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장소법','기억의'장소법', '기억의 궁전법'처럼 다른 매체에 기억하고자 하는 내용을 연결시키는 기억법이다. '장소법', '기억의 궁전'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대중 앞에서 시나 연설을 해야 했던 연설자가 사용하던 방법이다. 특정한 장소를 상상하여 동선을 생각한 후 동선에 따라 기억해야 할 것들을 배치해서 기억한다. 특정 장소마다 숫자, 이름, 연설 내용의 한 부분들을 설정하는 방법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시간과 주의력을 좀 더 가치있는 곳에 써야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비서나 보좌진을 둔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상 뇌를 확장해 주는 역할로 기억을 외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기억의 외부화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무언가 중요한 일, 특히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것을 잊을까 두려워 뇌는 반복해서 내용을 되뇐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이를 '되뇌기 고리'라고 부른다. 기록과 메모는 이런 측면에서 요긴하다. 지류 형식의 메모장도 좋고 핸드폰 앱에 기록할 수도 있다.
기록할 때, 범주화를 활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범주를 구성하는 성향은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새는 둥지를 짓는데 요긴한 것과 나쁜 재료에 대한 범주를 가지고 있다. 범주하는 능력은 가능한 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내려는 인지 원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류의 언어는 6.000여 종에 이르지만, 어느 문명권이나 가족과 친척을 범주화하여 인간관계를 정리한다. 범주화하는 능력은 우리 뇌에 기억을 위한 아주 중요한 기능이다. 따라서 기억의 외부화를 위해서는 글로 써서 눈앞에 두고, 메모할 때는 범주화 원리에 의해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기억을 돕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