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명백히 불합리한 것을 믿는다. 오히려 불합리가 믿음의 요인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인과관계를 맞추려고 하는 뇌의 무의식적 작용 때문이라고 본다. 의미 창조의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이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보기도 한다. 인간의 욕구에 상응했던 오순절 신앙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항상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현재는 새로운 종교적 유행을 맞게 되었다. 교파, 교리를 탈피한 개개인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내적 영성의 갈구다.
불합리가 믿음의 요인
인간은 왜 불합리한 이야기를 믿을까? 이에 대해 불합리한 것이 오히려 믿음의 요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다. 150년경 라틴어로 신학을 저술했던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한 뒤 부활했다고 진술했고, 이에 대한 해명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믿을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신은 왜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이 명제를 믿으려면 바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명백한 불합리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뇌가 믿으라고 하는 것을 믿는다. 프랑크푸르트 막스 플랑크 두뇌연구소의 볼프 징어에 따르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원인이 존재하며 모든 행동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가정하는 우리의 욕구로부터 신이 고안된다고 진술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위험한 세상 속 불완전한 정보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이 진화했다. 오늘날까지 의사소통에서(인간과 동물과의 소통도 포함된다) 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시각적인 견본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견본을 인식하는 것은 뇌의 기본 능력이다. 갓난아기는 주변 세계의 음성 견본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는 결코 언어를 습득하지 못할 것이다. 들을 때, 언어를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동한다. 이러한 모든 행위의 바탕에는 의미를 추구하려는 본능적 행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페터 브루거는 하나의 견본에서 평균 이상의 내용을 인지하는 행위로부터 불합리에 대한 믿음이 일종의 부작용처럼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즉 불합리에 대한 믿음은 창조성을 얻는데 대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다. 물론 우리 뇌의 대뇌피질은 어떤 것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곧바로 이러한 불합리를 상대화한다. 그 이유는 뇌 속의 주인이 의식적 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뇌 속 주인은 바로 무의식이다. 무의식의 힘은 매우 강력하여 비록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배후의 의도로 지목되면 자동적으로 믿게 된다.
오순절 신앙
오순절 신앙은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2절~4절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에서 유래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혀 같은 것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묘사된 오순절 역사는 인간이 최면 상태, 무아경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기술된다. 당시 외부 관찰자의 비판적 시각으로 '술에 취한 것 같다'라고 표현한 것이 그대로 실려 있다. 무아경 상태는 최면 상태와 비슷하여 의식이 제한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심리적 경험이나 요구사항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능력은 특히 능숙한 매개자에게서 관찰된다.
오순절 운동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났다.1906년 흑인 노예의 아들이었던 윌리엄 조셉 시무어 목사는 오순절 기적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방언이나 예언, 퇴마 같은 고대의 종교적 표징들이 다시 살아나고, 성령의 직접적인 작용을 믿었다. 오순절 운동은 번영신학으로 발전했다. 창세기 12장 2절~4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큰 민족이 되도록, 그리고 이름을 떨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복을 주실 것이고,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저주를 내리시겠다는 구절이다. 이같은 몇몇 구절은 번영신학자들이 하느님은 가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석하자 재산을 축적하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를 겨냥한 선동 슬로건이 되었다. 오순절 신앙은 전체 교회 역사에서 가장 급격하면서도 폭발적으로 전파되었다.
미국 에센 주의 고트하르트 오블라우는 사회 빈민층의 사람들은 오순절 교리에 따라 좌절, 술, 약물 등의 노예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고와 행동의 긍정적 변화로 실제로 성공적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성경에 기술된 2000년 전의 경험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블라우는 인간관계가 기본적으로 느슨한 그들에게 종교단체가 온기와 후원을 제공하자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서 가능하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오블라우는 개인 교화에서 나아가 오순절 단체와 사악한 세계를 구분하는 이원론뿐만 아니라 엄격한 도덕사상도 제정되었다고 말한다.
종교적 유행
20세기 후반 교회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고 새로운 종교적 유행이 도래했다. 새로운 유행은 종파에 구애되지 않는 개인의 영성추구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뉴에이지 운동은 서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괴팅겐 대학의 프란츠 발터 교수는 '독일 중산층은 교황을 거세게 비판하면서 뉴에이지 성향의 서적이나 치료요법에 열광했다. 학계의 여성들은 기존 교회를 떠나 동양 사상이나 단식 세미나, 초월 명상, 주술 혹은 불교 강좌, 신비주의적 신앙에 사로잡혔다. 이로부터 개인이 다양한 종교적 재료와 구원의 양념들을 손수 버무려 요리한 '의미' 메뉴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즉 개인적 성향의 종교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영적 각성을 전파하는 설교자들은 인류 역사에 존재하는 깨달음을 얻은 인물들인 예수나 부처, 노자, 힌두교 스승을 거론하지만, 스스로 종파를 창설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고객들이 영적 성숙의 힘겨운 과정을 거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중 몇몇은 영적 성숙의 과정을 직접 겪지 않았다.
지성인들은 '뉴에이지'다음으로 '넥스트에이지'를 선전한다. 이들은 시대의 변화가 아닌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하는데, 패러다임은 미국의 자연과학 이론가인 토마스 사무엘 쿤의 개념이다. 쿤은 한 사회가 공유하는 신념과 가치, 행동방식의 전체적 조합을 패러다임이라고 이해한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이 변하면 가치규범이 비약적으로 변화한다고 했다. 어쨌든 사람들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종교의 유행은 그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한다. 지금의 종교적 패러다임은 특정 교리 없이 개인의 내적 평안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