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을 위해 우리의 유한한 의지력에 의지하기보다 유리한 상황을 재배열하는 방법이 쉽다. 그리고 인적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힘도 재구성한다. 미국 사회 금연 성공의 비결도 교육이나 캠페인이 아닌 상황의 변화였다.
상황 재배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상황을 재배열하고 통제하는 전략은 사실 수동적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스스로의 행동 대신 주변의 상황을 바꾸는 방식이니 말이다. 우리의 직관은 즉시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라고 말한다. 상황을 바꾸는 전략이 우회적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나'를 제외한 나를 둘러싼 세상이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사람들, 때와 장소, 심지어 스마트폰 속 가상세계 역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외부적 힘이 우리의 행동을 추진하거나 억제한다.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스탠퍼드 대학생들을 무작위로 짝지어 퀴즈 게임 실험을 하였다. 두 명 중, 한 명은 질문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대답을 해야 한다. 정해진 문제는 없다. 질문자는 자신이 아는 지식 범위 안에서 아무 질문이나 하면 된다. 제멋대로의 질문에 대답자는 정답을 맞힐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게임 이후 참가자들에게 자신과 파트너의 지적 수준을 평가하게 했다. 놀랍게도 답변자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을 상대방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질문에 답을 못해 바보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분명 정당하지 못한 무작위의 퀴즈 게임으로 당연히 질문자에게 유리했다.
불평등한 상황이라는 외부적 힘이 명백히 존재했음에도 그들은 상대에게 유리하고 자신에게는 불리한 법칙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우리는 이처럼 주변 상황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행동이 주변의 압박에 얼마나 좌우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상황을 변화시키는 상황 재배열 전략은 우리에게 습관을 형성하는 데 매우 효율적임을 알 수 있다.
사회적 힘
독일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거대한 변수로 주변 사람을 뽑았는데, 그는 이를 '사회적 힘'이라 불렀다. 이 힘은 우리의 상황에 개입하는 무수한 타인이다.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뜻이다. 한국 속담에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고 했으니, 교류하는 사람의 영향력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셈이다.
식당에서 대식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 그들이 음식을 권하든 권하지 않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인지하지 않는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의 허기와 음식의 맛 때문에 과식했다고 보고했다. 타인의 행동은 자신의 식사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타인의 영향력에 대한 또 다른 실험을 보자. 미국의 공군 사관학교 후보생 3500명이 참가한 타인의 영향력 테스트가 있다. 체력점수가 좋은 학생과 체력 점수가 낮은 학생을 룸메이트로 한 방을 쓰게 했다. 그런 조합의 후보생 30명은 같이 식사하고 같은 공간에서 공부했다. 반년이 지난 후, 후보생들의 체력은 향상됐을까? 아니면 다 같이 하락했을까? 결과는 후보생들의 평균 체력 점수가 초기보다 하락했다. 연구진은 그 원인을 체력이 낮은 동료와 영화 관람이나 게임 같이 체력 소모가 덜한 활동은 같이 할 수 있었지만, 장거리 달리기 같은 힘든 운동은 함께 할 수 없었을 상황에서 찾았다. 사회적 힘이 사관학교 후보생들의 평균 체력 점수를 떨어뜨렸던 것이다.
여러 실험에서 알 수 있듯 언제나 유리한 상황에 자신을 놓아두는 법을 터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저절로 흘러갈 것이다.
미국 사회 금연 성공의 비결
미국 사회 금연 성공의 비결 역시 캠페인이나 니코틴의 해악에 대한 대중의 지식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물론 미국인의 의지가 강해서는 더욱 아니다. 1950년대는 담배의 전성기였다. 미국 인구의 절반이 지독한 흡연자였고, 영국의 흡연 인구는 80퍼센트에 달했다. 그러나 리처드 돌과 리처드 페토가 흡연이 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린 이후로 의학 기술의 발달은 담배의 폐단을 속속 밝혀냈다. 1950년대 대중적 잡지였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도 흡연과 암에 대한 기사를 자세히 게재했다. 그러나 흡연율의 하락은 미미했다.
미국 흡연사의 거대한 전환점은 육군 군의무감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였다. 이 기관이 제시한 담배와 죽음의 연관성 데이터는 명확했고, 1966년 담뱃갑 겉면에 경고 문구가 적힌 담배가 출시됐다. 그러나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지식은 사람들의 행동 변화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1973년까지도 흡연자는 40퍼센트였다. 현재는 미국 흡연 비율이 15퍼센트로 떨어졌는데, 미국 사회의 금연 상황 재배열 50년의 결과다. 앞에서도 계속 지적했듯 습관을 길들이는 문제에 관해서는 지식이나 의지력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 미국은 담배 광고를 전면 금지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공간을 금연구역으로 정했다. 담배 자판기가 사라졌고 , 기차와 사무실 같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닉슨 대통령이 승인한 담배 규제 법안들은 미국 흡연자들의 환경을 변화시켰다. 흡연이라는 습관을 부추기는 환경을 축소하고 망가뜨린 것이다. 이제 흡연자들은 실외로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야 하고, 추운 날에는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며 담배를 피워야 한다.
상황 재배열 덕분에 수많은 흡연자가 금연에 성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습관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로 의식적 자아가 해내지 못한 일을 성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