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다루기는 한국 전통 결혼 풍습의 하나다. 혼인이 끝난 후, 신랑은 신부 마을 청년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곤혹스러워했다. 신랑을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아 발바닥을 때리기도 하였다. 신랑 다루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신랑 다루기
신랑 다루기는 한국 전통 결혼 풍습 중 하나다. 동상례와 같은 의미다. 혼례를 마친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치르고 난 다음날 저녁, 신부집에서 마을 청년들을 초대하여 대접하였다. 청년들은 신랑을 끌어다 놓고 노래를 청하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해 신랑을 난감하게 만든다. "왜 남의 마을 처녀를 훔쳐 갔느냐", "혼인의 여섯 가지 절차를 아느냐", "첫날밤은 어떻게 지냈냐"며 고백하라고 신랑을 괴롭힌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심한 경우 신랑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힘센 사람이 일어서서 짊어지거나, 대들보에 매달아 발바닥을 방망이나 몽둥이로 때렸다. 남의 집 귀한 딸을 버려놓은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신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고, 장모는 이를 말리고자 술과 푸짐한 안주를 차려낸다. 양반집에서는 시를 읊게 하여 신랑의 학식과 지혜를 떠보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는 신부 마을에 새로 온 신랑이 신부의 마을 청년들과 먹고 마시면서 얼굴을 익히고 정을 나누기 위함이다. 사위가 된 신랑이 처가에서 마을의 젊은 청년들을 대접하는 것을 '신랑 다루기''신랑 달여먹기' 또는 '동상례'라고 한다. '동상'이란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의미와 동쪽 침상이라는 뜻이 있다. '동상'은 점차 남의 집 사위를 높여서 일컫는 말이 되었다.
유래
'신랑 다루기' 혹은' 동상례'의 기원은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사위를 구하려고 서당을 돌아다니다가 동쪽 침상에서 헐벗은 서생을 맞아 사위를 삼으면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또 고려 말 이후 신랑이 신부집에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남침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선조 때, 명장 권율이 동상에서 공부하는 이항복을 사위로 삼아 동료에게 한 턱을 낸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혼례가 끝난 뒤에 신부집에서 친척이나 친구들이 신랑을 잡아 다리를 묶어 거꾸로 매고 몽둥이로 발바닥을 때리면서 신랑을 희롱하고, 마침내 술과 음식을 받아내는 풍속으로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신부를 희롱했다. 진나라 때 갈흥이 지은 <포박자>를 보면 "세속에 신부를 희롱하는 법이 있으니,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데서 추잡한 말로 묻고 빨리 답하기를 요구하면서, 혹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고 발을 얽어매어 거꾸로 매달기도 하였다. 도가 지나쳐 피가 흐르고 팔다리가 꺾이기까지 한다. 명나라 중기의 학자 양신의 <단언록>에 오늘날에도 이 풍속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어서 신부를 맞는 집에서 새 사위가 몸을 피하여 숨으면, 뭇 남자가 다투어 농지거리로 신부를 희롱하였다. 혹 치마를 걷어 올리고 바늘로 살을 찌르기도 하고, 버선을 벗기고 발바닥을 때리기도 한다"라고 했다. 조선시대 이덕무는 신부를 희롱하는 것은 남자를 놀리는 것보다 더욱 추잡하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신랑 다루기는 1960,70년대까지 한국의 농어촌 지역에서 흔하게 행해졌다.
의미
과거에 전통 혼례는 신랑이 낯선 신부마을에 와서 혼례를 치렀다. 그리고 일정 기간 신부집에서 살았다. 기간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로 가기도 했다. 따라서 신부 마을에 온 신랑은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신부집에서는 술과 음식을 준비해 마을 청년들과 얼굴을 익히며 친분을 맺도록 하였다. 또한 신부 쪽 사람들은 신랑에게 귀한 딸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러한 장난들은 신랑이 앞으로 결혼 생활에서 얼마나 잘 적응할지, 특히 아내와의 관계에서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지를 시험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신랑에게 힘겨운 과제를 주거나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신랑의 인내심과 재치, 책임감을 평가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의 피로연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신랑 신부 친구들이 모여 신랑에게 장난을 치는데 신부도 참여하기도 한다. 장난의 종류나 형태는 과거와 다르지만 의미는 비슷하다. '신랑 다루기'의 옛 풍속이 현대에도 계승되는 또 다른 이유는 결혼식 이후의 긴장을 풀고, 신랑과 신부 양 쪽 친구들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결혼은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전히 결혼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장난이 과도하게 이루어지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어 점차 사라지거나 간소화되는 추세다. 대신 결혼식을 보다 부드럽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결론
'신랑 다루기'는 신부 마을에 온 이방인으로서의 신랑이 신부 마을 공동체로 진입하는 행사였다. 중국의 경우 신부를 놀렸던 풍습은 반대로 신랑집으로 가서 혼인식을 하고 살아야 했던 신부가 신랑 공동체로 입문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난감한 과제들을 던지면서 신랑의 인내심과 책임감, 재치를 시험하기도 하였고 앞으로 신부를 잘 대해줘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현대에도 결혼식을 올린 후, 신랑신부의 친구들과 함께 피로연을 하면서 장난이 행해지기도 하는데 역시 내면의 의미는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