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데스'는 죽은 자들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다. 하데스는 올림푸스 12 신에 포함되지 않는다. 제우스와 동급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염라대왕'은 하데스보다 권한이 한정적이다. 10개의 지옥 중에서 제5 지옥인 발설지옥의 판관이다. 하지만 그의 권한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각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행했던 행위에 따라 천국, 지옥 외 다른 영역으로 보낼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염라대왕
'염라대왕'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시왕( 十王:열 명의 왕 )중 하나다. 흔히 염왕, 염마왕 등으로 불리며 대체로 관복 혹은 제왕복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고대 힌두교 경전인 <리그베다>에 최초의 인간인 '야마천'이 죽음을 경험하고 그곳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힌두교의 저승신인 것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야마' 혹은 '야마 하자'라 하는데, 그 음이 변하여 '염마라사'로 불렸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염'과 '라'를 따와서 '염라'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앞의 두 글자인 '염마'를 따와 '염마대왕'이라고 불린다. 즉 기원은 힌두교와 혼재된 불교의 신인 것이다.
죽은 자의 세상, 죽은 후의 심판이라는 개념은 세상을 빛과 어둠,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등 이분법으로 나누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이 종교 교리는 주변 여러 지역으로 퍼져 사후사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가까운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하지만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현재의 삶과 완벽한 이데아가 있다는 이분법적 세계를 제시했다. 플라톤은 사후심판에 따른 형벌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지만, 인류는 점차 현재 삶의 부조리와 불공평이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후 심판에 따른 상벌 개념은 현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고대인(혹은 현대인에게도)에게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고 점차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였다.
'염라대왕'은 흔히 저승의 왕이라 불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군주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10개의 지옥 중에서 제5 지옥인 발설지옥의 판관이고, 각 지옥마다 다스리는 왕이 따로 존재한다. 오늘날의 직업으로 보자면 판사에 해당한다. 사람의 행위에 따라 생사와 운명을 지배하고 죽은 사람을 심판한다. 죄의 유무에 따라 지옥 혹은 아귀, 축생으로 보내고, 살아서 선행을 많이 해왔다면 천상 혹은 극락으로 안내한다. 선과 악이 서로 비슷하다면 다시 인간계로 보낸다고 한다.
업경대
'업경대'는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죄업을 드러내 보인다는 거울로 '업경륜'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가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생전에 지은 죄를 모두 털어놓도록 한다.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염라대왕은 그 죄목을 일일이 두루마리에 적는다. 죄인의 공술이 끝났을 때 더 이상 업경대에 죄가 비추어지지 않으면 심문이 끝난다. 심문이 끝나면 두루마리를 저울에 달아 죄의 경중을 판가름하고, 그에 따라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불경<사분율행사초자지기>에 보면 일 년에 세 번 1월, 5월, 9월에 업경륜이 남섬부주를 비추는데, 만약 선악이 있으면 그것이 모두 거울에 나타난다고 하였다. <지장보살심인연시왕경>에는 사방팔방마다 업경을 달아두어 모든 사람의 업이 마치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같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중국 승려 현장이 쓴 <대당서역기>를 보면 "바라니사국에 있는 정사(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도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의 서남쪽에 돌기둥을 세웠는데 10여 척(대략 3m)이나 된다. 그 돌은 매우 깨끗하고 맑아서 거울처럼 사물을 비춘다. 그곳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불교의 수호신들 모습이 나타나고, 선악에 대한 것도 때때로 나타난다"라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인도에서 오래전부터 업경대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전의 말씀에 따라 시왕(열 왕)을 봉안하는 지장전이나 명부전에 업경대를 설치하는 사찰이 많다. 보통 업경대는 나무로 제작하고 업경륜은 금속 또는 나무로 만들어 채색하기도 한다. 거울은 원형 혹은 타원형이다. 거울 주변에는 불꽃문양을 사실적으로 나타내어 지옥의 분위기를 전한다. 크기는 50~60cm의 것이 보통이고, 1m가 훨씬 넘는 것도 있다.
한국 설화에는 업경대에 얽힌 내용이 많다. 불교에서 업경대는 일반 신자들에게 엄격한 수행이나 생활을 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찰에 드나드는 일반인들에게도 권선징악의 상징물 효과를 낸다. 한국 사찰에서는 대개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 법당 앞에 놓고 있다.
사십구재의 의미
'사십 구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행하는 불교식 제사의례를 말한다. 6세기 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상 숭배 사상과 불교의 윤회 사상이 절충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우며 종교의식을 하여 죽은 이가 그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그래서 '칠칠재'라고도 부른다. 49일 동안 저승에서 일곱 대왕들에게 7일째 되는 날마다 심판받다가, 49일에 최종 심판을 받고 환생한다고 믿는다. 심판을 받는 날에 맞추어 49일 동안 7번 재를 지내는 데, 7일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술을 마시거나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현재는 49일 하루만 재를 올린다.
원래 불교 '무아설'에서는 개개인의 생전에 지은 업보는 그 사람 개인에 한정되며, 어떤 방법으로도 자녀 혹은 후손에게 전가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유교 사상은 이 49일 동안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하여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리면, 죽은 부모나 조상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고, 또 그 조상의 혼령이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불교의 '무아설'과는 다른 '육도(여섯 가지 도)'사상적 해석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천국, 인간계, 가축, 아수라, 아귀, 지옥도 등 여섯 세계를 윤회하고 있으므로 살아있는 사람이 지옥도, 아귀도, 아수라도, 축생도에 가지 않도록 비는 기도 행위가 49재라는 것이다.
마치며
힌두교, 불교, 유교의 기록을 볼 때, 고대인들은 죽은 자가 마지막 심판을 받기 전까지 49일의 시간이 있다고 믿었다. 그 기간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기도하고 종교의식을 행하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다. 죽은 후에 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극악무도한 사람은 바로 지옥에 간다. 하지만 천국으로 바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선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니면 '연옥'에 머무른다. 그곳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탄원기도의 덕을 입으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동서양의 이러한 사후 중간영역에 대한 믿음은 나약한 인간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 있게 바로 천국에 갈 정도로 선한 사람은 드물다는 전제가 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구, 이웃이 좋은 곳에 가도록 정성스러운 기도를 하는 제도를 굳이 만든 이유는 결국 부족한 본인도 그런 기도의 덕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그리고 49일 동안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활 습관과 상황을 재정비할 수 있다. 결국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