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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 유래, 옥황상제 신앙, 중국과 한국의 차이

by 빛의 라 2024. 8. 30.

전래 동화, 드라마, 영화 속 옥황상제는 인자하지만 엄한 할아버지 모습이다. 용포에 관을 쓰고 희고 긴 수염을 기른 분이 위엄 있게 의자에 앉아계신다. 중국 도교의 신으로 유입되어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모셔졌고 현재는 증산교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이미 천신 숭배 신앙이 있었기에 융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옥황상제

 

'옥황상제'는 하늘을 다스리는 신으로 하늘에 있는 신령들 중에서 그 지위가 가장 높다. 인간 세계의 황제처럼 위로 36천, 아래로 72지를 장악하여 모든 신계, 불교계, 신선계, 성스러운 영역과 인간세계, 그리고 저승의 일도 관리하는 무한한 능력을 지녔다. 원래는 중국의 민간 도교에서 받드는 최고신의 명칭이며 한국의 무당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신격이다. 도교의 최고신으로 한국에 유입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하늘을 주재하는 신격을 숭배하는 신앙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옥황상제'를 하늘의 신으로 받아들여 하느님과 동일시하였다. 

 

'옥황상제'는 예로부터 농경민족의 가장 큰 소망인 풍년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에서 섬긴 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황천존' 또는 '옥황대제''천공''천공조'라고도 부른다. 옥황상제라는 최고신 밑에는 많은 신이 있다. 신들의 상하 계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신들의 관계는 현세 봉건사회의 군신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즉 황제에 해당하는 옥황상제를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의 위계질서를 형성한다. 밑으로 성황신, 조왕신, 칠성신, 염라왕, 사해용왕 등이 있다.

 

유래

 

도교가 전하는 옥황상제의 탄생설화는 다음과 같다. 

'광엄묘약국'의 정덕왕은 후손이 없자 여러 도사들을 불러 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힘을 모아 기도를 드린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왕비인 보월비가 태상노군에게 간청하여 아기를 받는 꿈을 꾸고 일어나니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옥황상제다. 그는 자비심과 인정이 많은 인물로 성장하여 나라의 보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정치를 했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산속에서 수행에 힘쓰며 800겁( 겁: 불교의 시간 단위. 무한한 우주의 시간을 의미. <서유기> 소설에서는 1550겁의 수행을 했다고도 한다)을 거쳐 도가의 비법을 깨달아 인명을 구제하였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즉 '옥황상제'는 불교의 부처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불교 교리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깨달으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도교 역시 인간이 1만 번의 선을 행하면 옥황상제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악행이라도 저지르면 그동안의 공덕이 다 사라진다 하니, 쉬지 않고 1만 번의 선을 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간으로서 거의 불가능하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에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옥황상제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친근할 뿐 아니라 하나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옥황은 중국에서 처음부터 최고신이 아니었다. 여러 상제 중 하나였다. 도교는 분파가 많고 주술성이 강하여 분파마다 모시는 상제가 따로 있었다. 중국에 옥황상제가 등장한 것은 원시천존이 최고신이었던 6세기 무렵으로, 송나라 진종(968~1022)이 다스리던 시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진종은 옥황상제의 열렬한 신자였다. 그래서 신하는 물론 백성들까지 옥황상제를 최고신으로 숭배하여 섬기기를 강요하였다.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러 <삼국지>를 비롯한 여러 소설에 등장하면서 인기가 많아져 최고신으로 확정되었다.

 

옥황상제 신앙

 

중국 도교의 최고신 옥황상제에 대한 신앙은 타이완이나 동남아시아의 화교들, 한국, 일본에 있다. 중국 사람들은 제사가 있으면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난로와 천공로를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들어갈 때, 반드시 거기에 절을 하는 관습이 있다. 천공로가 옥황상제를 상징하는 존재이기 대문이다. 옥황상제 탄생일로 알려진 음력 1월 9일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천공묘(옥황상제를 모시는 사당)에 참배를 한다. 각 가정에서는 응접실에 '등좌'라고 불리는, 종이에 신의 모습을 그린 대롱 모양의 물건을 장식한다.

 

한국에서는 증산교, 대순진리회를 비롯하여 무당들이 옥황상제에게 제를 올려 섬기고 있다. 옥황상제의 인기는 그의 자리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즉 1만 번의 선행을 쌓으면 누구나 옥황상제가 될 수 있다는 교리 덕분이다. 그 선행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조상을 공양하며, 모든 것에 자비심을 가지고 자기희생을 하면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지만, 도교 경전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근거로는 특별히 난해한 경전을 이해하거나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체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행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므로 평범한 사람이 시작하기 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옥황상제 신앙은 소원성취의 기도 대상이 되는 동시에 신자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차이

 

옥황상제 신앙의 도교는 도참사상(미래의 길흉에 대한 예언을 믿는 사상)으로 한때 혹세무민 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진수(233~297)의 <삼국지>에 한나라 당시, 황건적의 두목 장각은 주술과 도술로 신기하고 허황된 행위로 이목을 끌었다. 그러자 백성들이 따랐다고 한다. 그가 죽자 제자들은 스승 장각이 죽은 후 신선이 되었다고 퍼뜨렸다. 전제 왕권이 몰락하는 정권 말기에 봉기한 황건적의 난, 황소의 난, 태평천국의 난 등은 도가사상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현세중심적 사고는 옥황상제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또한 옥황상제의 존재도 매우 현실적인데, 복을 가져올 수 있는 존재라면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옥황상제이든 구분하지 않는다. 기독교적인 절대신, 유일신이 아니라 만물에서 최선의 상태에 있는 존재로 보았다. 

 

한국에서는 삼신할머니, 칠성신, 하느님, 천주, 미륵불, 옥황상제 같은 신성한 존재들이 자연, 천지의 섭리, 도와 같은 근원적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비롭고 엄숙하며 공명정대한 인격체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천신 숭배 사상은 건국신화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세운 국가인 것이다. 따라서 옥황상제에 대한 신격은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위력을 가진 인격체로 보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같은 신격이다.

 

 

마무리

 

변화무쌍한 하늘은 언제나 인류의 두렵고 신비한 존재였다. 공활한 하늘에 포함된 해, 달, 별 등 모든 천체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농경 사회에 순조로운 천체의 움직임은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니, 하늘은 매우 중요했다. 일조량과 강수량을 정하시는 분이니 말이다.

점차 인간 세상에 등장한 족장, 봉건 군주, 왕이라는 지배자의 경험은 하늘의 위계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옥황상제는 하늘의 지배자 중 피라미드 끝에 계신 분이다. 한국의 옥황상제나 그리스의 제우스 그리고 각 문화권의 하늘신이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