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세계의 최소 단위 입자는 파동이면서 입자다. 결론적으로 물리학은 모든 존재가 진동한다고 말한다. 러시아 학자는 진공 공간에 DNA를 제거했음에도 잔상이 남는 것을 보고 유령 DNA라고 불렀다. 장인의 작품을 보통 혼이 담긴 작품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단순히 비유가 아닌 물리적인 실체를 갖는 말이다.
입자의 이중성
양자역학의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은 빛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영점 광자 실험'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입자가 빛과 마찬가지로 이중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입자가 입자와 파동 두 개의 특성을 가지는 이상한 현상은 고전 물리학의 이론에 반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 등의 물리적인 속성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물리학은 세상만물이 진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떨림은 진동하는 에너지의 파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세상의 존재들이 마치 라디오 방송국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주파수를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은 커다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쓰나미가 왔을 때 땅과 바다의 심상치 않은 파동을 느낀 동물들은 모두 산으로 내달렸다. 심지어 벌레와 뱀, 개구리들도 지진의 징조를 느끼고 일치감치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집채만한 파도가 닥치고 건물이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자연의 신호는 우리의 오감이라는 센서로 해석할 수 있는 주파수의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진화의 산물인 인간에게도 자연의 진동에 공명할 수 있는 본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언어와 신호에 길들여지면서 자연과 소통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면서 본능을 잃어버렸다. 자연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왕따 시킨 결과를 낳은 셈이다.
유령 DNA
1990년대 초, 러시아 과학자 블라디미르 포포닌 박사의 유령 DNA 실험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다. 그는 진공상태에서 빛의 패턴을 측정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의 공간에 레이저를 비췄더니 당연히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에는 DNA샘플을 넣고 레이저를 비췄다. DNA와 만난 레이저는 일정한 패턴의 무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DNA샘플을 제거한 뒤, 다시 그 빈 공간에 레이저광선을 비추자 놀랍게도 처음과는 다른 독특한 패턴이 나타나 몇 주 동안이나 남아 있었다. 포포닌은 이러 현상에 '유령 DNA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DNA가 사라져도 그 잔영이 한동안 유령처럼 그 공간을 맴돈다는 것이다.
이 결과대로라면 우리가 머무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이런 '유령 DNA'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공간은 사람들이 만들었던 파동을 고스란히 기억한다는 의미다. 파동을 감지하는 센서가 발달한 사람은 낮에는 인파로 북적이다가 밤에 조용해지는 공공장소에 혼자 있을 때, 누군가가 있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유령처럼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냄새나 감촉으로 느끼기도 한다. 실체가 아닌 잔상으로 말이다.
모든 존재의 파동을 저장하는 공간의 파동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집이 사람을 닮는다는 말은 타당하다. 성격이 차분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가면 집의 분위기 역시 차분하고 조용한 경우가 많다. 집 안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집주인의 생각과 행동이 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터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싸우고 슬퍼하면 터도 그렇게 변한다. 사람과 공간은 보이지 않게 서로를 닮아간다.
혼이 담긴 작품
우리는 보통 장인의 작품을 표현할 때 '혼이 담겼다'라고 한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사람이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은 만든 이의 체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넓은 의미에서의 '유령 DNA'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탄생 과정부터 만든 이의 땀과 정성이 집중 투사된 작품은 만든 이의 파동이 강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책은 집중된 정신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때문에 작가의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물건 중 하나다. 그래서 어떤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편해지지만 어떤 책은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 분야에 정통한 장인들은 그 무게와 엄중함을 알기에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연인들이 이별을 할 때,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나 목걸이를 상대방에게 주는데,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직관이 시키는 행동으로 봐야 한다. 자신의 체취가 담긴 물건을 건넴으로써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영원히 하나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물건은 나의 염원이 담기면서 특별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언뜻 보면 근거 없는 믿음처럼 보이지만 유령 DNA의 관점으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로부터 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주인을 기억하는 물건을 함부로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의미인데, 이 또한 위의 논리에 비추어볼 때 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