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혼례는 일반적으로 저녁에 올렸다. 결혼을 의미하는 한자어 구성이나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물리적 이유, 그리고 철학적 의미까지 더해져 저녁에 올리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사실 지금도 이 시간대에 결혼식을 하면 좋은 점이 많다. 자세히 알아보자.
전통 혼례 저녁에 올리다
현재 결혼식은 대부분 낮에 행한다. 특히 점심 식사 전에 식을 올리고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전후한 시간대에 예식장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다. 많은 사람들이 대낮에 예식을 치르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보고 선호한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예식은 저녁에 이루어졌다. 불과 50,60년 전까지만 해도 저녁 무렵에 혼례를 올렸다. 혼례를 뜻하는 한자어 '혼(婚)'자를 풀어보면, 남자(氏)와 여자(女)가 날(日)을 잡아 맺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자를 의미하는 글자를 떼어내면 바로 저녁을 뜻하는 혼(昏) 자의 모습이다. 글자로 미루어 보건대 오래전 과거부터 혼인은 저녁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문헌 <예기>의 '혼기'편에서도 어둡다는 의미의 혼(昏) 자가 쓰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여자(女)를 의미하는 글자를 덧붙여 혼(婚)으로 쓰게 되었다.
혼인을 주고받은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라남도 구례 지방의 아흔아홉 칸 집으로 유명한 유 씨 가문의 1920년 대 혼인 문서를 보면 자녀 다섯 명의 혼례를 신시에 행했다고 한다. 신시는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로 해가 기울기 전 무렵이다. 이때쯤이면 시골에서는 굴뚝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세종 때, 왕세자가 혼례를 올리기 위해 오후 3시 45분 (신시, 삼각)에 가마를 타고 세자빈의 집을 향해 광화문을 출발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자빈 집에 도착하면 적어도 오후 5시쯤은 될 것이며, 전안례를 행하고 신부를 맞이해 궁으로 돌아오는 것은 6시~7시 사이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 때, 혼례를 위해 사용한 횃대나 초의 사용을 명문화한 문서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문무 1품 이하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의 집에 갈 때 횃불로 길을 밝히도록 하였는데, 이때 횃불의 개수는 아버지의 계급에 따라 다르다. 2품 이상은 횃대 열 자루, 3품 이하는 여섯 자루를 쓰게 하였다.
저녁에 올린 이유
혼례를 저녁에 올린 이유는 물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가는 시간을 생각해 보자. 신랑은 말을 타고 간다지만, 다른 일행은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보통 성인이 하루에 100리(40km)를 걷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신부 집이 20~30km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면, 신랑이 아무리 일찍 출발한다고 해도 오후 1시~2시에 신부가 사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식을 올릴 수는 없다. 먼 길을 왔으니 잠시 요기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복장을 갖추려면 적어도 한두 시간은 걸린다. 따라서 혼례는 자연스럽게 오후 3시~5시 사이에 행할 수밖에 없었다.
유교 철학인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저녁 무렵인 신시(오후 3시~5시)는 음기가 때에 맞아 만물이 타고난 성정을 부여받는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신시를 지나 유시(오후 5시~7시)가 되면 음과 양이 서로 같아진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혼례시간은 대낮이 아닌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저녁 무렵이다. 혼인이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예식이다. 혼인식이 끝나면 마침내 부부로 결합됨을 의미하는 잠자리 시간대가 바로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대가 된다.
저녁대가 좋은 이유
현대에도 저녁에 결혼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저녁대가 좋은 이유는 음양오행설에 따른 유교 철학적 의미 외에도 현실적인 이점이 있다.
우선 한가한 저녁시간대에 예식을 치르면 예식장비가 낮시간대보다 저렴하여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저녁 시간 때에는 조명이 특히 중요하게 작용해 결혼식 전체의 분위기를 더욱 로맨틱하고 우아하게 만든다. 은은한 조명이나 화려한 조명 장식 등을 활용하면 특별한 결혼식 연출이 가능하다. 사진 촬영 역시 황혼과 어우러지는 자연광을 활용하거나 도시의 불빛 등을 배경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다.
결혼식을 저녁에 하면 신랑, 신부뿐 아니라 하객들에게도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결혼 당일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경우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특히 평일 저녁에 결혼식을 할 경우, 낮에 하면 하객들이 일정 조정에 어려움을 겪어 참가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지만, 저녁에는 그런 부담이 줄어든다. 그리고 식이 끝나고 준비한 저녁 식사는 파티와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된다. 하객들도 더욱 즐겁고 편안하게 축하 자리를 즐길 수 있다.
결론
결혼을 의미하는 한자어의 구성을 보면 꽤 오래전부터 혼인식은 저녁에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여러 문서의 객관적 자료가 증명한다. 현재는 낮에 결혼식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에 예식을 하면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신랑과 신부, 하객 모두에게 여유롭게 준비하고 참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조명이 만들어내는 로맨틱과 분위기와 화려함은 예식을 더욱 특별하게 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적 의미에서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시간대라고 하니 저녁에 결혼식을 안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