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통적으로 산실에 공을 들였다. 출산은 가족과 공동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의료가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출산 과정 중 산모나 태아 사망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전통적으로 출산이 이루어지는 산실 준비로 삼신상, 짚 깔기, 불지피기 그리고 궁중 산실에 대해 알아본다..
전통 산실 준비
삼신상
전통적인 산실 준비의 첫 단계는 삼신상을 차리는 것이다. 삼신할머니는 한국의 전통신앙에서 인간이 태어나도록 아이를 점지해 주는 탄생신이다. 출산이 임박하거나 출산 후에도 삼신할머니에게 아이의 출산과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산실 윗목에 깨끗한 짚을 깔고 쌀, 깨끗한 물 한 그릇, 미역을 놓아 삼신상을 차려 순산을 빌었다. 출산직후, 산모에게 삼신상에 올렸던 쌀과 미역으로 밥과 미역국을 만들어 먹였다. 출산 이후 3일, 7일, 37일에 삼신할머니께 제사를 다시 올렸다. 삼신할머니 숭배는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던 고대 시대, 초기 모계중심 사회 때 이를 관장하는 여성적 신성으로서 삼신할머니를 숭배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삼신상은 출산 징후뿐 아니라, 아이의 첫 돌 등 중요한 가족 행사에도 삼신할머니에게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드렸다. 이때 차려지는 삼신상에는 주로 풍요를 상징하는 곡류, 정성과 감사를 뜻하는 떡, 좋은 결실 맺기를 바라는 과일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음식이 올려진다.
짚깔기
출산이 다가오면 삼신상을 차리고, 산실을 깨끗이 치우고 방바닥에 짚을 깔았다. 짚은 벼, 보리, 밀, 조 따위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다. 산모 방에 짚을 까는 것은 출산할 때 흐르는 양수와 피 같은 분비물 처리를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짚에는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차단하고 방 안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짚은 습기를 잘 흡수하고 배출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쾌적한 실내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 제습제였다. 그리고 짚은 벌레나 해충이 서식하기 어려운 재료다, 특히 말린 짚은 해충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 산모가 오랜 시간 누워 진통을 하면 허리가 이픈데, 짚을 깔면 바닥이 부드러워지는 쿠션 역할을 하여 산모에게 도움이 되었다.
짚에는 이처럼 실용적 측면 외에 신앙적 요소도 있다. 짚에 순산을 도와주고 아이의 성장을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쌀은 한국 민족에게 식량이기도 했지만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농경 사회에서 쌀은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한 해의 풍요와 가족의 생계가 쌀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쌀의 수확은 신의 가호를 의미했다. 또한 쌀의 작은 씨앗에서 많은 곡식을 생산해 내는 강력한 생명력은 다산과 번영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쌀에 곡령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따라서 여러 신에 올리는 모든 제사상에 쌀을 올려놓는 이유는 풍작과 번영, 다산을 약속받기 위한 중요한 행위였다.
불 지피기
산모가 분만할 기미가 보이면 산실에 불을 지펴 방을 데웠다. 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하여 산모와 신생아의 체온을 유지하게 하였다. 또한 불은 청결과 소독에 쓰였다. 불을 지피면 산실 내부가 건조해지고 습기와 냉기를 없애,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나 세균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 이는 현대의 위생 개념과 비슷하다. 한국 전통신앙에서 불은 악귀나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믿었다. 불은 실제로 분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부정을 막고 깨끗하게 정화시킨다는 상징적인 기능도 했다. 출산은 생명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에 악귀가 산모와 신생아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막는 벽사(사악한 귀신을 쫓아낸다)의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궁중의 산실
왕비나 후궁의 임신이 확인되면 궁중에서는 출산 예정일 한두 달 전에, 길게는 세 달에서 다섯 달 전에 임시로 산실청을 설치하여 출산준비를 했다. 산실 벽에 간지로 방향을 표시한 '24방위도', '당일도', '차지부'라는 글씨를 붉은색으로 써서 붙였는데 이는 신들에게 산모와 태아를 지켜달라고 기원하는 일종의 부적이다.
그런 다음 길한 방향을 보아 산실 바닥에 자리를 마련한다. 먼저 맨 아래에 곱게 짠 볏짚을 깔고 그 위에 빈 가마니를 얹는다. 가마니 위에 풀로 엮은 흰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양털방석과 기름종이를 차례로 놓는다. 그 위에 백마가죽을 깔고 마지막에 고운 볏짚을 놓는다. 백마 가죽의 머리 아래쪽은 비단을, 머리 위쪽은 아들을 많이 낳게 해 달라는 의미로 날다람쥐나 족제비 가죽을 둔다. 이렇게 자리가 다 마련되면 태를 받아둘 옷에 붉은 글씨로 '최생부'라고 썼는데 순산을 재촉한다는 의미다.
그다음에는 어의가 '차지부'를 세 번 읽는데, 신에게 자리를 빌린다는 뜻이다. 산모가 출산할 자리로 상하좌우, 동서남북의 공간을 빌려 쓰겠으니 잡귀들을 다 물리치고 깨끗한 자리에서 순산하게 해 달라는 기원이다. 이렇게 세 번 주문을 외우고 산모가 출산할 때, 힘줄 때 잡으라고 말고삐를 방벽에 걸어둔다. 또 천장엔 비상사태를 대비해 방울을 매달았다. 산실 문 위 에는 종을 달았는데, 출산이 끝나면 종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출산 후 산자리를 걸어 놓기 위해 산실 문 밖 세 곳에 3cm 정도 되는 못을 박아 놓았다. 산실은 반드시 산모가 평소에 거처하는 방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결론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대가족 중심의 유교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자식 특히 아들을 낳는 것은 혼인한 여인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와 아이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높았다. 따라서 안전한 출산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삼신상을 차려 삼신할머니의 도움을 빌었고, 산실에 짚을 깔고 불을 피워 깨끗하고 따뜻하게 유지했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한 환경을 마련했다. 그 외 산실에 부적을 붙이거나 신성한 물건을 두는 방법으로 악귀를 쫓아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려 했다. 출산이 가정의 존속과 직결되기에 산실에 공을 들여 순조로운 출산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