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사회에는 집단마다 일정한 형식의 의식과 의례가 있다. 그리고 의식뿐 아니라 특정한 힘을 가진다고 믿는 물건인 부적도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은 불안정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믿음은 우리 머릿속에서 생성하는 세계로 물리적 세계보다 강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 희망이 맨 먼저 죽는다.
집단의 의식
모든 공동체는 그 집단만의 다양한 의식이 있다. 학자들은 이 점에 생물학적 근거를 발견했다. 동물행동학자인 로렌츠는 인간의 행동 체계와 동물의 행동 체계 사이에 실제로 유사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서열 본능이나 질투심, 결속 행위 등이 해당된다. 거위 한 쌍이 다른 낯선 새들 옆에 가게 되면 수컷 거위는 목을 쭉 빼고 낯선 새에게 분노를 표시한다. 그러면 그 낯선 새는 대개 도망간다. 공격을 한 수컷 거위는 곧바로 암컷 거위에게 서둘러서 돌아오며, 둘은 큰 소리로 기쁨을 외친다고 기술한다. 이 거위들은 서로 몸을 맞대고 상대의 귀에 직접 대고 큰 소리를 낸다. 수컷 거위가 대가족을 거느린 경우에는 가족 모두가 목을 쭉 뻗고 격렬하게 승리의 소리를 외친다. 이렇게 성공을 거둔 수컷 거위는 가족들의 지지에 힘입어 도망간 상대를 또다시 공격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많은 가족이나 '승리한 집단'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가을이나 겨울에 자주 발생한다.
우리는 기러기의 이러한 행위와 유사한 행동을 축구경기 전이나 후에 열성 팬들이 거리나 열차에서 전투적으로 외치는 구호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거위가 꽥꽥 울어대며 승리를 외치는 소리와 같은 효과를 가진다. 축구이든 팝 음악이든 관계없이 팬들의 행동방식은 매우 유사하다. 팬들은 의례화된 행동을 함께 취하고, 팬클럽에 모여 함께 스타를 숭배한다. 스타 숭배는 신을 숭배하는 것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즉 스타 숭배는 종교적 의식과 많은 유사성을 갖는다. 팬들은 지금까지도 1977년에 죽은 미국의 로큰롤 스타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묘지를 찾아 순례를 떠난다.
카셀 대학에서 팝 이론을 가르치는 미하엘 라페는 팬클럽의 구조는 마치 스타들이 세속화된 성인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한 스타가 죽으면 남유럽 가톨릭 국가의 성인 숭배를 연상시키는 숭배 의식들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스타는 고대의 우상과 같은 존재이다. 세속화된 우상은 그 원시적 모델과 다를 바 없이 '신봉자'의 소망과 요구를 투영하는 영사막이라 할 수 있다.
의식, 부적
의식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이나 방식을 의미하고, 부적은 힘 있는 존재의 힘을 빌리고 싶을 때, 그의 특수한 힘이 깃들었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물품을 이른다. 이러한 것들은 인류에게 이로운 점이 있다. 의식이나 부적은 고대 인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험이 따르는 세계에서 삶에 대한 해답 역할을 해준다.
먼저 의식은 동일한 것이 영구히 반복되는 질서를 정해 이를 따르게 함으로써 안전한 느낌을 제공한다. 공동체의 다양한 행사나 종교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거시적인 의식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어린아이들이 주로 잠이 들 때 특별한 의식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항상 똑같은 베개를 베고 잔다. 아니면 동물 인형을 안고 자기도 한다.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책을 보거나 오르골 음악상자의 음악을 듣기도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의식은 조금은 강제적인 성격을 띤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자유로운 의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오늘의 심리학>이라는 학술지의 한 주요 기사에서 심리학자들은 개개인이 의식을 취할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유의미한 전통의 힘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삶에 기쁨을 주는 개인적인 의식, 예를 들면 틈틈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도 의식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일상의 의식들은 불안한 상황에서 익숙함의 세계로 인도함으로 안정을 찾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의식에 쓰이는 특정 물건이 인간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부적을 뜻하는 단어 탈리스만은 행운을 부르는 물건을 뜻하는 '틸라즘'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다. 탈리스만은 위험하거나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세계에서 인간에게 안정감을 제공했다. 고대인뿐 아니라 현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본인에게 의미 있다고 여기는 물건에서 안정감과 희망을 품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자동차 경주 선수인 미하일 슈마허는 항상 상어 이빨을 목에 걸고 다닌다. 뮌헨의 프로 권투 선수 알렉산더 페트코빅은 은반지를 항상 끼고 다닌다. 그는 경기 중에도 은반지를 신발 속에 넣어 두는데 이 반지가 힘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이나 물건이 아니라, 그것으로 제공되는 사고다. 우리 머릿속에서 만드는 세계상은 실제 세계 자체보다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믿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희망이 맨 먼저 죽는다
희망이 가장 먼저 죽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 더 나아가 희망을 포기하는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유태인 수용소나 포로수용소와 같은 매우 비참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심각한 질병이나 불행 때문에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죽음을 맞게 된다. 금실 좋은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남은 한 사람도 뒤이어 죽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 홀로 남은 사람은 배우자가 죽은 이후의 삶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일 대학에서 연령 증가와 기대 수명은 삶의 의지에 크게 달려 있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이다.
건강과 질병은 복잡한 방식으로 인간의 종교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다. '플라세보'는 원래 즐겁다는 뜻이다. 의학계에서 쓰이는 플라세보 효과는 가짜 약이라도 환자가 진짜 약이라고 믿으면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약의 효능은 믿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간호사보다 의사가 투여할 때 더욱 효과가 크다. 그래서 모든 의사는 의사가 가장 좋은 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이나 여성은 환자의 심리 상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의 예수는 마가복음 10장 52절에서 맹인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38년 동안 병으로 누워 있는 환자에게 예수는 낫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요한복음 5장). 병자가 그렇다고 말하자 예수는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말하자, 병자가 일어났다. 의학교수 페터 마티에센은 치료에 선행하는 이러한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거룩한 정당성을 포기하고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힘으로 통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의학자들은 치유받은 사람들의 믿음이 인식과 같다고 본다. 즉 믿음은 고차원적인 인식에 도달하는 힘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