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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읽기 경험, 굳이 종이책, 공감 능력 발달

by 빛의 라 2024. 3. 19.

생후에서 5세까지 초기 읽기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점차 디지털 기기로 읽기 형식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굳이 종이책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책이 주는 촉감과 공간과 구체성이 인지 발달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인물에 공감하는 능력의 발달은 타인과의 교류뿐 아니라 보편적 도덕률을 습득하고 나아가 배경지식의 토대가 되어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초기 읽기 경험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처음으로 겪는 초기 읽기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초기의 뇌 발달에서 느낌 기반의 신경망은 인지 기반의 신경망보다 앞선다. 기억의 감정적 측면을 관여하는 편도체가 기억저장소로 알려진 해마 신경망보다 먼저 구축된다. 그래서 처음 부모의 품이나 무릎 위에 앉아 책 속 이야기를 들을 때, 아이의 촉감과 감정의 느낌은 뇌 안의 주의와 기억, 그리고 지각 영역에 연결된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존 보울비, 메리 에인스워스 등의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의 삶에서 초기 감정과 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뇌과학은 그들의 주장에 생리학적 증거를 마련해 주었다. 

신경아동학자 지슬랭 드앤-람베르츠는 생후 2개월 된 아기가 엄마의 말을 듣는 동안 아기의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아기의 뇌는 듣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언어 신경망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속도는 느렸지만 아기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언어 체계를 발달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인간이 언어를 학습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건은 공동 관심이라고 했다. 부모가 천천히 의식적으로 오직 아이에게 읽어줄 때, 서로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아이의 뇌신경회로는 활성화된다. 읽기 활동은 부모와 유대를 맺어줄 뿐 아니라 서로 주의를 공유하고 상호작용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선의 일치감은 아이의 주의에 영향을 주어 부모나 부모가 바라보는 것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하는 것을 배운다. 이것은 단순히 책 읽기 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의 개체발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공동의 시선이 호모 사피엔스 종이 진화해 온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본다.

 

 

굳이 종이책

 

디지털 기기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생생한 효과음이 더해져 흥미로운데, 굳이 종이책이 필요할까? 아이들의 집중도가 더 높고 단어와 개념도 훨씬 쉽게 반복 학습까지 도와주는데 말이다. 지난 10년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실제로 부모들은 스크린 속의 더욱 뛰어난 낭독자가 아이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해 자신의 일을 넘겨주었다. 또 다른 이유는 내용을 이해도 못하는 아기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을 어처구니없어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확실한 것은 부모가 직접 읽어주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다. 

읽기의 첫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성과 반복이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내용이나 등장인물을 다시 보고 싶을 때, 손으로 책 페이지를 넘겨 앞으로 돌아가 찾아본다. 페이지는 인지적, 언어적 반복과 재연에 물리적 실체를 부여한다. 페이지 위의 이미지와 개념을 반복하면서 배경지식을 구축해 간다. 또한 책은 보고 듣고 맛보고 입으로 무는 것이 가능한 물질이다. 촉감은 뇌신경에 최선의 다중감각적, 언어적 연결이 구축되도록 도움을 준다. 이것은 피아제의 아동 인지 발달 중 감각운동 단계 구간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디지털 스크린은 주로 시각만 사용하게 되고 다양한 촉감을 느낄 기회가 없다. 무엇보다 되돌아가서 반복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디지털 기기에 되돌아가기 기능이 있지만, 책이 가진 물리적 공간의 구체성은 되돌아가서 찾기에 더 용이하다. 스크린에는 공간과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혼자 스크린을 마주하며 녹음된 소리로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바로 부모와 아이가 공유하는 애정 어린 시선과 상호 작용이다. 아이가 경험하는 인간적인 상호접촉, 그리고 책과 인쇄물의 물리적인 접촉은 구어와 문어, 내면화된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최선의 길이다.

 

 

공감 능력 발달

 

아이들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 공감 능력이 발달한다. 공감은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이야기야말로 인류 종이 성공하는데 가장 결정적이었고, 지금도 그런 도전을 훈련해 보도록 도와준다고 썼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 유대감을 추구하여 협업으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인류 종은 오랜 시간 수많은 관계를 만들고 연대하며 문명을 이루었는데, 그 바탕이 바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뇌과학이 증명한다. 뇌에는 거울 신경이 있는데 이것을 에모리 대학교와 요크 대학교의 신경과학자들이 읽는 과정 중에 뇌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밝혔다. 우리가 촉감에 관한 표현을 읽을 때는 촉각을 담당하는 영역의 신경망인 감각 피질이 활성화되고, 움직임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운동 뉴런이 활성화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사랑, 슬픔, 두려움, 설렘, 가슴 아픔 등의 다양한 감정에 무의식적으로 동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된 공감력은 유년기의 세계를 넓혀줄 뿐 아니라 인간의 핵심적인 가치인 타인과의 동류의식과 연민을 가르쳐준다. 그것을 통해 얻은 '타자'에 대한 이해는 평생 지속된다. 그리고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는 이야기는 우리가 살면서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전략을 세우도록  도와준다고 주장했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역시 타인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우리의 느낌뿐 아니라 인지가 자극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한 편의 이야기는 뇌에 배경 지식으로 쌓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토대가 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개인적인 지식 기반 마련 이외에도 사회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규범을 습득할 수 있다. 영웅이나 악당, 존경스러운 왕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타인에게 친절하다는 것의 의미, 누군가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학습하게 된다.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모든 문화에 내재된 보편적 도덕률을 학습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닌 공감의 감각은 세계에 관한 내면의 지식으로 넓혀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