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는 독서는 추론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통찰이라는 열매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최고의 인지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훑어보기식의 읽기 방식은 점차 이러한 과실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추론과 비판적 사고
깊이 읽는 과정에서 추론과 비판적 사고가 전개된다. 추론을 할 때 우리의 좌우 전전두엽 피질에 폭넓게 분포된 신경망은 텍스트의 정보를 분석 예측하고, 그 결과는 내부의 평가 시스템에 들어가 각 가설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좌측 전전두엽 영역이 관찰과 추론을 연결한 뒤에 자체 생성된 가설이 하나둘 차례로 나오게 된다. 그동안 우측 전전두엽 피질은 각 예측의 가치를 평가한 다음 이 판단을 다시 좌측 전전두엽 영역으로 보내 최종 허가를 받는다. 이 과정은 과학적 방법이 실행되는 것과 비슷하다.
뇌의 관점에서 보면 비판적 사고는 과학적 방법의 전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텍스트의 내용을 우리의 배경 지식, 유추, 연역, 귀납, 추론으로 합성하여 저자의 숨은 가정과 해석, 결론을 평가한다. 문학 연구자인 마크 에드먼드슨은 <왜 읽는가?>에서 비판적 사고란 개인적인 믿음과 확신을 검토하고, 잠재적으로는 그것을 뒤집을 수도 있는 힘까지 들어 있기 때문에 대개 입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는 결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를 계발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즉각성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에서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된다. 에드먼드슨은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위협하는 두 경우를 지적한다.
첫 번째 위협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어떤 강력한 틀에 갇혀 그것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경우다. 정치적 혹은 종교적 관점,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이 포함된다. 때론 도덕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조차 다른 생각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때 비판적 사고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위협은 자신의 신념 체계를 전혀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다. 즉 과거의 사상 체계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그것을 살펴보고 학습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갖지 못한 경우에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더욱 깊이 있는 이해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를 배우는 능력마저 저해될 수 있다. 지적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거나,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비판적 사고에 대한 위협이다.
추론과 비판적 분석은 독서를 통해 길러진다. 이런 과정을 꾸준히 강화하면 읽기 차원에서 나아가 삶에도 적용된다. 자신의 동기와 의도를 구분할 줄 알게 되고, 전략적 사고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복합적인 추론 기술을 계발하고 사용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사려 깊고 비판적인 분석가의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통찰
통찰의 사전적 의미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통찰은 읽기 행위의 최고이자 궁극의 결과다. 인지신경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텍스트에서 정보를 취합하여 최선의 사고와 느낌을 연결한 다음 비판적 결론을 도출하여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엿볼 기회가 되어줄 인지적 공간으로 미지의 도약을 감행하는 것의 절정이라고 말했다. 철학자 마이클 패트릭 린치는 깨달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오는 것 혹은 문이 열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통찰이 찰나적인 본성을 띠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남긴 인상마저 곧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고나 가치관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 그렇다면 통찰은 뇌의 어느 부위에서 오는 것일까?
신경과학자 애른 디트리히와 리엄 갠소는 뇌전도 검사와 다른 신경영상 연구들을 통해 창의성이나 통찰의 순간, 뇌의 특정 영역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오히려 뇌의 여러 영역, 특히 전두엽 피질과 전방 띠이랑이 활성화된다고 하였다. 뇌의 이 영역들은 공감과 유추, 분석, 연결, 깊이 읽기의 과정들과 연관된 부위다. 통찰과 창의적 사고는 어디에나 있는 셈이다. 인지적으로나 생리적으로 강렬한 활동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결론적으로 독서를 통해 독자 개개인은 그들만의 무엇을 발견한다. 깊이 있는 읽기는 뇌 회로 안에서 우리가 지각하고 느끼고 아는 것에 중대한 변화를 준다. 회로를 변화시키고 형성하고 정교화시켜 우리의 삶을 둘러싼 환경 너머로 이동하게 해 준다.
디지털 시대의 훑어보기
신경학자 지밍 리우는 디지털 시대에 스크린을 통한 읽기는 '훑어보기'가 새로운 표준이라고 말한다. 디지털로 읽을 때 흔히 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텍스트상의 '단어 스팟' 을 재빨리 훑어 맥락부터 파악한 다음, 맨 끝의 결론으로 돌진했다가 가끔은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세부 내용을 골라보기 위해 본론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노르웨이 학자 안네 망겐은 동료들과 인쇄물 읽기와 스크린 읽기의 인지적, 정동적 차이를 실험했다. 그 결과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이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스크린으로 읽었을 때는 시간 순으로 기억을 배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체와 상관없이 읽기에서 연속성과 순차성 그리고 뉘앙스를 잃어간다.
뇌는 신경가소성이 있다. 신경가소성은 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뇌가 스스로 신경 회로를 바꾸는 능력이다. 특정한 환경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가 디지털로 많이 읽을수록 우리의 뇌 회로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
우리는 추론과 비판적 분석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지식기반을 활용해야 하는데, 점차 외부 지식에 의존도가 높아가고 있다. 내적 자원의 빈곤은 추론과 연역, 비판적 사고와 분석의 기초가 부실해진다.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쉽게 된다. 배경 지식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다면 ,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질이나 우선순위, 편견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없다면 받아들이는 정보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 테너가 뛰어난 기술을 생산해 낸 지성이 되레 그 기술로부터 위협받는다면 수치스럽다고 했는데, 훑어보기 방식의 부작용이 그의 우려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문자 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 이 새로운 형식이 뇌에 가져올 변화를 검토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