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가옥 부엌에는 가장 크고 중요한 장소인 부뚜막이 있다. 부뚜막은 고대 민간 신앙의 하나인 '성주신'과 '조왕신' 신앙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부엌의 한 장소인 부뚜막과 두 신의 연관성, 그리고 두 신이 각각 구별되지 않고 함께 불려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한국의 부뚜막
한국의 부뚜막이란 전통 주거형식 중 하나인 부엌의 가장 크고 중요한 장소다. 부뚜막은 불을 지피는 아궁이 위로 흙과 돌을 섞어 만든 평평한 단이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 위에 음식을 하기 위한 큰 솥을 얹어 놓는데, 그 솥 주변의 공간을 의미한다. 부뚜막은 철기시대부터 보인다. 부뚜막은 움집의 화덕과 같이 음식을 조리하고 실내를 따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부엌의 부뚜막은 방 아래에 깔린 온돌로 열이 전이되어 부엌에서 조리한 열이 방바닥을 덮여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이 구조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한국 고유의 난방 및 조리 시스템으로 발전해 왔다.
중국에서 280~289년 사이에 편찬된 <삼국지> '한조(KOREA PART)' 부분에 '변한에서는 부뚜막을 모두 문의 서쪽에 설치한다'는 기록이 있다. '변한'은 4세기 경까지 낙동강 하류에 있었던 세 부족국가 중의 하나다. 이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경상남도 일대에서는 부뚜막을 집안의 서쪽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 보이는 '조(竈)'는 물리적인 부뚜막시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뚜막(부엌)을 관장하는 신인 '조신' 혹은 '조왕신'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부뚜막의 구조적인 측면과 민간신앙의 연관성을 알게 된다.
한국의 부뚜막과 조왕신앙
한국의 부뚜막은 단순히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를 넘어, 가정의 생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중심 공간이었다. 불과 식량을 지키고 보존하는 장소는 생존과 직결되는 곳이다. 따라서 그곳에 신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경기 하남 미사리 KC 38호 주거지의 부뚜막 왼쪽 뒤 점토단은 토기 1점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로 규모가 작다. 단순히 조리에 필요한 토기를 임시로 올려놓던 공간이라고 보기에 적합한 크기가 아니다. 토기 1점만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라는 것은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례의 의미임을 보여준다. 이 토기단은 한국 민속에서 부뚜막신(조왕)의 신체로 모셔지던 작은 물그릇을 올려놓기 위해 설치했던 단으로 보인다.
'조왕'은 형태가 없다고 여겨져 대체로 작은 그릇을 놓고 깨끗한 물로 채운다. 민속에서 부뚜막신 '조왕'에 대한 신앙은 특히 전라도지역에 가장 잘 남아 있다. 지역에 따라 조왕의 신체를 모시는 형태는 다르다. 전라도와 충청도에는 작은 그릇에 깨끗한 물을 떠놓는데, 매일 그 물을 갈아준다. 경상남도는 위패를 모신다. 경상북도는 솥뚜껑을 엎어 놓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린다. 강원도 지역은 부뚜막 위에 창호지와 마른 명태를 걸어 놓거나 조그마한 항아리에 쌀을 담아 놓는다. 경기도는 바가지에 삼베 조각을 넣어 선반에 둔다. 또는 벽에 벽지나 헝겊을 붙여 둔다. 서울은 항아리에 쌀을 넣어둔다. 형태는 다양하나 작은 그릇에 물을 담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 하남 미사리 유적지에서 부뚜막 아궁이 앞에서 여성의 머리 장식용으로 보이는 청동제와 철제의 비녀가 각각 출토되었는데, 이것 역시 부뚜막에서 행해진 조왕신앙과 관련된 유물로 이해한다.
한국의 부뚜막과 조왕, 성주신의 혼용
앞에서 살펴본대로 '조왕신'은 부뚜막을 관장하는 신이다. 한국 민속에서 '성주신'은 집안의 평안과 운수를 관장하는 가택신이다. 집을 보호하는 여러 신 중, 최고의 신으로 여겨진다. 성주신을 모시는 방법은 주로 대들보에 하얀 종이를 붙인다. 혹은 하얀 종이를 꽃이나 네모 형태로 접어 그 안에 제사상에 올렸던 쌀 세 수저 분량을 넣어 안방 선반에 놓는다. 단지에 쌀을 넣는 '성주단지'를 선반에 두어 '성주신'을 모시기도 한다.
그런데 경남 거창, 산청, 의령, 진해, 창원, 하동, 함양, 합천 등의 지역에서는 '조왕'을 '성주조왕'이라고 부른다. 이 호칭은 강원도 홍천과 정선에서도 확인된다. 호칭뿐 아니라 두 신을 모시는 형식이 혼합되는 것을 보이는데, 서울에서는 조왕의 신체로 항아리에 물이 아닌 쌀을 넣는다. 강원지역에서도 조신을 모시는 신체에 부뚜막 위에 창호지와 마른 명태를 걸거나 역시 조그만 항아리에 쌀을 담아 성주의 신체를 모시는 형식과 혼합된다. 결론적으로 가택신인 '성주'와 부엌신인 '조왕'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부엌과 방이 완전히 구분되지 않았던 고대의 일실형 주거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거실 역할을 하는 대청 없이 부엌과 방이 붙어 있는 일자형 가옥에서 '성주조왕'을 함께 모시는 민속이 많이 보인다.
따라서 철기시대 유적지에서 부뚜막 위나 옆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조왕의 신체이면서 동시에 성주의 신체일 가능성이 높다.
결론
철기시대부터 보이는 한국의 전통 주거 문화의 하나인 부뚜막은 생계와 직결되는 곳이다. 따라서 부엌을 관장하는 신인 '조왕신'을 섬기는 의례는 오랜 시간 민간에 전승되었다.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과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명칭이나 모시는 형식이 혼재되는 이유는 부엌과 방의 일실형 주거공간에서 기인한다. 1970년대, 외할머니댁에 가면 부엌에 항상 물을 담아놓은 그릇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음식을 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성주조왕신'을 섬기던 민간신앙의 의례였다. 한국 민속신앙에서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뚜막과 그 안에서 행해진 성주신 및 조왕신에 대한 믿음은 가정의 안정과 행복을 기원하던 한국인의 신앙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