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권에는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의식이 있는데, 문화에 따라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한국의 전통 상례는 유교의 영향이 매우 컸지만 사실 민속신앙, 불교, 도교의 영향도 잔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통 상례의 내용과 절차, 변천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한국의 전통 상례 내용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이자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의례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고, 혼례로 가정을 이루고 노인으로 부양을 받다가 죽음에 이른다. 일생의 마지막 의례로 이를 처리하는 개념과 방식은 국가의 이념과 종교, 민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고려 말에 유입된 중국의 <가례>가 규정한 유교식 관혼상제는 한국의 일생 의례로 자리 잡으면서 상례 역시 유교식 상례가 전통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한국의 상례에는 사실 고유문화, 민속신앙,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외래 요소들이 융화되어 있다.
유교식 상례는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기가 사라진다고 여기는 현세 중심적인 사후관에 기반한다. 그래서 육체는 매장하지만, 영혼은 조상신으로 승화시켜 사당에 모셨다. 4대째 자손이 드리는 제사까지 마치면 그 영혼 역시 사라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민속 신앙에서는 이승과 저승을 구분했고, 불교와 기독교에서도 천당과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를 인정하고 있어 전통적 상례에도 이러한 요소가 혼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즉 유교식 상례를 치른다고 하지만, 한국의 상례에는 사후 세계를 인정하는 요소들이 융화되어 있다. 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을 통해 조상신으로 모신다고 하지만, 고인을 저승길로 안내한다고 믿는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음식(사잣밥)을 차린다. 죽은 사람을 넣는 상여관과 운반 도구들에 저승사자, 봉황, 용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풍습은 민속 신앙, 불교, 도교의 생사관이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전통 상례 절차
한국의 전통 상례를 효의 실천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은 가장의 상실로 나타나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산 사람을 위한 의례로 해석된다. 위기 극복의 표현은 여운의 형태로 나타난다. 3년의 긴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는 행위와 의례를 치른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가장의 죽음을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고인이 조상신이 되는 것을 점차 인정한다는 표현이다. 시간의 연장으로 인해 가족 성원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완화하는 위기 극복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유교식 상례는 19개의 대절차로 구성되고 그 안에는 수많은 소절차가 포함되는데, 대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초종의: 죽음의 확인 및 상례를 준비하는 절차다. 떠난 혼을 크게 3번 부르는 '초혼'도 해당된다.
2. 습: 1일째 의례로,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힌다.
3. 소렴 : 2일째 의례로, 시신을 베로 짠 천에 싸서 묶는다.
4. 대렴: 3일째 의례로, 관에 넣는 절차다. 현대에는 습, 소렴, 대렴을 한꺼번에 처리하는데 그 과정을 '염습'이라 한다.
5. 성복: 4일째 의례로, 상주가 상복으로 갈아입고 정식으로 상주가 되는 절차다.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6. 조 : 조문을 받는 절차로, 상주가 상복을 입은 이후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문상: 혹시 상주가 멀리 있다면, 초상이 났음을 듣고 해야 하는 일이다.
8. 치장: 장사에 필요한 부장품, 용품과 매장지를 정하는 등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9. 천구: 발인 전날, 시신이 든 관을 사당으로 옮겨 예를 취해 조상에게 고한다.
10. 발인: 매장지로 떠나는 일이다. 중간 길에서 '노제'를 지낸다.
11. 급묘: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여 장사 지내는 절차다.
12. 반곡 : 묘소에서 신주(죽은 사람의 이름을 쓴 나무판)를 모시고 집에 돌아오면서 곡하는 절차다.
13. 우제: 우제는 혼령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 지내는 제사다.
14. 졸곡 : 항상 울지 않고, 아침과 저녁에만 곡(슬피 운다)을 한다.
15. 부제: 돌아가신 분의 신주를 조상을 모신 사당에 함께 놓는 것의 절차다. 졸곡 다음날 한다.
16. 소상: 13개월에 지내는 절차. 고인을 추모하는 제사다.
17. 대상: 돌아가신 지 25개월째에 고인을 추모하는 제사로, 빈소를 철거한다.
18. 담제: 27개월째 되는 달에 일상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제사다.
19. 길제: 사당에 신주를 독립적으로 모시고, 5대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서 치우면서 올리는 제사다. 이는 망자와 연결된 의례의 마지막 단계다. 이로써 3년상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가계를 계승한다.
상례의 변천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는 인류의 시작과 동시에 존재했었다. 선사시대부터 시신을 불태우는 화장, 땅에 묻는 매장, 풀을 두껍게 덮어 들에 버리는 유기장 등의 방법이 있었으니 그 결과로 고인돌, 고분 등이 유물로 남아 있다.
부족 국가시기에는 순장이 일반적이었다. 고구려에서는 상례에 풍악을 울렸고 많은 재물을 함께 묻었다. 부모는 3년, 형제는 3개월 동안 상복을 입었다. 부여에서는 흰옷을 입었고, 얼음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서는 염(시신을 천으로 감싸고 묶음)을 하고 관에 넣은 후, 봉분을 조성하였다. 왕과 부모, 배우자와 자녀의 상에는 1년 상복을 입었다. 통일신라에서는 불에 태우는 화장 이후 강이나 바다에 뿌리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역시 화장을 하였다.
고려는 불교와 함께 유교를 받아들여 삼일장을 금하고 13개월에 소상, 25개월에 대상, 27개월에 담제를 지내는 유교식 상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교식 3년 상례는 기간이 길고 낯설어 개월수로 바꾸기도 하였으니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 이르어 모든 의례가 유교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16세기 성리학의 발달로 유교식 상례가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되어 한국 전통 상례의 기본이 되었다.
조선 말기, 개항과 함께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서구식 상례와 일본식의 상례가 도입되었다. 일제는 1934년 '의례준칙'을 제정하여 한국의 3년상을 폐지하였고 삼베로 만들던 상복에도 변화를 주었다. 1940년대 의례복은 일상복에 나비장, 완장, 리본 등을 붙여 상복을 의미하게 하였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상례라는 용어를 장례로 대체하였다.
현대에는 개인의 상례를 전문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 의뢰하여 의례 대행 제도를 활용한다. 장례지도사라는 전문 직업도 생겼다. 현재는 남자 상주가 검은색 양복을 입고 팔에 완장을 두른다. 여성은 검은색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한다.
장례를 치르는 기간 역시 전통적인 3년상은 없어졌고 3일상이 일반화되었다. 시대와 일상생활의 변화, 국토의 효율적 이용 등으로 전통적인 매장은 거의 없어지고 화장으로 바뀌었다. 화장은 봉안당, 봉안묘, 수목장, 해양장 등 다양한 장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
한국 전통 상례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영혼을 편안히 보내고, 남은 이들이 고인의 삶을 기리며 애도하는 의식을 말한다. 상례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효를 실천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로 여겨진다. 전통 상례의 기간은 3년으로 매우 길었는데, 이는 고인에 대한 예우와 효 사상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남은 자들이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상복을 입고 애도하는 기간 동안 조상을 기리며 후손들에게 효와 예절을 가르치는 교육적 의미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