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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픽투스, 이야기꾼 지위, 유대감 화학물질 분비

by 빛의 라 2024. 3. 28.

호모 픽투스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야기를 통해 협력하고 문화를 계승발전시켰기 때문에 호모 픽투스이기도 하다. 고대부터 이야기꾼의 지위는 사회적으로 높았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뇌 속 화학물질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사시대인의 캠프파이어

호모 픽투스

 

인류를 지칭할 때,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갖는데, 호모 픽투스라고 해도 타당하다. 호모 픽투스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로 소통하고 이야기로부터 배운다. 경험을 체계화할 개인사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플롯과 요점이 결여된 삶일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동물이다. 

우리 뇌는 이야기를 하도록 진화했다. 부족한 정보로도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은 좌뇌와 우뇌의 협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뇌의 작화하는 능력과 인과관계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갈망은 종교와 학문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야기의 내용은 종교적, 도덕적 명령에서 사냥이나 결혼의 구체적 조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간수하고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문화는 거대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이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류 공동체의 모든 지혜를 이해 가능하고 전달 가능하며 설득하여 실행하도록 만드는 해법은 바로 스토리텔링이었다고 말한다. 고대 부족민들은 밤마다 불 가에 둘러앉아 연장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통일된 집단에 속해 있고 부족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각인하게 된다.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지혜를 전수받는다. 아이들에게는 확실한 교육방식이었다.

고대인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가장 많은 것을 가장 훌륭히 배운다. 심층적 의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이야기의 목적이다. 우리를 사로잡고 세상과의 소통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꾼  지위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전 세계 어느 부족에서든 이야기꾼의 지위는 사회적으로 높았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의 최근 연구에서 필리핀의 수렵채집 부족 아그타족은 이야기꾼에게 뛰어난 특전을 베푼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더 많은 자녀를 낳고 집단 내에서 더 높은 인기를 누린다. 아그타족은 숙련된 사냥꾼에게 생계를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 솜씨를 어느 능력보다 우러러본다. 어김없이 고기를 가져다주는 사람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어김없이 들려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도 훌륭한 이야기에 사족을 못 쓰며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후한 보상을 안겨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높은 지위를 누리는 사람 중에는 스타 작가, 영화 제작자, 배우, 코메디언, 가수처럼 허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 최고 부호 유명인 명단의 맨 위에는 이런 이야기의 장본인이 올라 있으며, 운동선수는 그다음이다.

이것은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아그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병을 고치는 의사, 애초에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는 환경미화원, 정부 공무원, 우리를 먹여 살리는 농민, 우리를 지켜주는 군인처럼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주지 않는다. 오히려 흉내의 달인들에게 부와 명예를 아낌 없이 선사한다. 마치 남들 앞에서 인형놀이를 하듯 평생 흉내만 내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유대감 화학불질 분비

 

영장류 학자 로빈 던바는 스토리텔링이 뇌에서 유대감 화학물질을 분비하도록 자극하여 집단 연대감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체를 묶는 이야기의 능력은 노래와 춤 같은 예술 형태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결속하는데, 이에 생화학적 증거가 있음을 밝혔다. 우리는 감정을 자극하는 극적인 영화를 보면 신경계에서 엔도르핀이라는 내인성 아편유사물질이 분비된다. 이 메커니즘은 인류와 영장류에 유대감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험자들은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를 본 뒤에 엔도르핀 수치가 높아지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유대감과 소속감이 더 커졌다.

우리는 사실에 기반한 논증을 접하면 경계태세를 바짝 조인다.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며, 논증이 자신의 기존 신념과 어긋날 때는 더욱더 경계한다. 반면에 이야기에 빠져들면 지적 방어망이 느슨해진다. 서사학 교수 톰 판라르는 이야기는 판단과 논증 없이도 지속적 설득 효과를 낳는 정신 상태라고 말한다. 즉 이야기는 합리적 사유 능력을 무력화한 채 정보와 믿음을 주입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함께 듣게 되면 지적 방어망이 해제된 상태에서 유대감의 호르몬까지 합세하여 공동체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은 주로 혼자서 아니면 친구, 가족과 함께다. 하지만 약 600년 전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공식적인 스토리텔링은 구두로 이루어졌고 종종 축제의 성격을 띠었으며 이야기꾼이나 배우가 집단을 상대로 공연했다. 이야기는 지극히 공동체적인 활동이었다. 사람들은 함께 이야기 나라로 이동하여 도덕주의적 시나리오의 시뮬레이션을 경험하고 똑같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