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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백과 초혼, 전통 사상의 신명, 귀신의 개념

by 빛의 라 2024. 10. 7.

한국은 전통적으로 사람은 혼백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혼'은 영혼을 '백'은 육체를 의미한다. 죽을 때, 혼은 다시 밝은 '양기'와 이와 반대되는 개념의 '음기'로 나뉜다고 믿었다. 이 글에서는 혼이 만들어내는 '신명'과 '귀신'에 대해 알아본다.

혼백과 초혼

혼백

 

사람의 정신은 '혼'이고, 육체는 '백'이다.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는 사람을 보면 " 저 사람 혼이 나간 것 같다"라고 표현하지 "백이 나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갑자기 놀라 멍한 상태를 '혼비백산'이라고 하는데, 한자어 풀이를 보면 혼이 날아가고(비飛: 날아간다) 백이 훝어졌으니 (산散: 흩어진다) 마치 그 모습이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마치 연기는 '혼'이고, 타고 남은 재가 '백'인 것과 같다.

 

초혼

 

'혼'이 하늘로 날아간다고 여겼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바로 혼을 부르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초혼' 또는 '고복'이라고 한다. '초복'은 상례 절차 중 하나다. 평소 망자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죽은 사람이 입던 홑두루마기나 적삼의 옷깃을 잡고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옷의 허리 부분을 잡는다. 마당에 나가 북쪽을 향하여 " 복복복 O관 O 씨 속적삼 가져가시오" 하고 세 번 부른 다음, 옷을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거나 죽은 사람의 머리맡에 두었다가 시신이 나간 다음에 불에 태운다. 이 옷의 처리 방식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혼을 부를 때 반드시 북쪽을 향했는데, 그 이유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북쪽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그 영향이 남아 있어 잠자리를 정할 때, 머리 방향을 북쪽으로 두는 것을 삼가려고 한다. 

그리고 혼을 부를 때, 크게 울부짖으면 나간 혼이 놀라서 못 돌아온다고 여겼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가도 '초혼'을 할 때면 잠시 우는 것을 멈추었다. 중국의 공자는 <예기>에서 '초혼'은 신에게 다시 살아나기를 비는 행위라고 했다. 따라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엄숙하지만 간절하게 혼이 돌아오도록 불러야 했다.

 

만약 불의의 사고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죽은 사람의 한복을 새로 짓고 혼을 불러들여 '초혼장'을 치르기도 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김상용은 청나라 군대의 침입으로 포위되자, 하인에게 옷을 주며 "나라 일이 이러하니 나는 마땅히 죽을 것이다. 이 옷으로 초혼을 하라고 아들들에게 전하라"라고 했다. 아버지 시신을 찾지 못한 아들들은 훗날, 아버지가 보내온 옷으로 초혼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전통사상의 신명

 

죽은 사람은 혼과 백이 분리되는데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때 흩어진 혼은 밝은 기운의 '양기'와 어두운 기운의 '음기'로 나뉜다. '양기'는 승천하여 '신명'이 되지만, '음기'는 땅으로 하강하여 '귀신'이 된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신명(神明)'과 '신(神)'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은 예수님이나 하느님, 부처님 등과 같이 예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말한다. 그러나 '신명'은 '조상신' 격을 의미했다. 조상신 격의 신명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예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만약 신이라고 인식했다면 그 존재의 신통력을 받들어 영원히 숭배해야 한다. 그러나 조상신격의 '신명'은 '인격신'인 까닭에 보통 4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낼 때 절을 하는 이유는 조상을 잘 예우하고 대접하여 후손을 보살펴주길 기원하는 의미다. 그들의 신통력을 믿어 숭배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상신 중에 숭배의 대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속신앙에 등장하는 임경업 장군, 최영 장군, 단종 대왕 같은 사람들은 죽어서 신통력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받들면서 신이 된 경우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의 존재론적 신의 의미와는 엄연히 다르다.

 

죽어서 '신명'이 되려면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원한이나 한이 많아 이승을 떠나지 못하면 신명이 될 수 없다. 한 세상 잘 살다가 가야만 한다. 그래서 하늘로 놀라가는 밝은 기운 '양기'를 밝다는 의미의 '명(明)'자로 하여 '신명'이라고 부른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신명'이 많다'라고 하는데, 이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신명'의 정서는 밝은 양기 덕에 환희와 감격, 쾌락 등의 긍정적 정서를 말한다.

 

귀신의 개념

 

조선 시대 성현의 <용재총화>에 혼백이 귀신이 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음양설에 따르면 천지간의 만물에 기(氣)가 있다. 서양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에너지와 비슷하다. 한국 전통 사상의 '기(氣)'는 정령을 말하며 양기의 정령을 '혼'이라고 하고, 음기의 정령을 '백'이라고 한다. 죽음이란 양기가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는데,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이 된다. 하지만 살아있을 때 원한이나 미련을 놓지 못할 때는 죽은 후에 공간에 떠있다가 음기가 되는데 음기가 모여 '귀신'이 된다'라고 쓰여 있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자도 귀신의 존재를 일부 인정했다. 익사하거나 살해당하거나 갑자기 죽는 등 비정상적으로 죽으면 그 기(氣)가 흩어지지 못하고 사람에 옮아 붙어 재앙을 초래하는 등 괴이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없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귀신이란 죽어서도 원한이 많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음기 덩어리다. 원한이 많은 귀신들은 인간 삶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고 여겼다. 이러한 귀신 관념 때문에 한국 전통 풍습에 음기의 발동을 누르는 것이 실생활에서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주문이나 부적, 약물의 힘을 빌려 쫓아내거나 귀신이 혐오하는 색채나 냄새, 맛, 빛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내려오는 풍습으로는 12월 마지막 날에 머리카락을 태우거나, 동짓날 팥죽을 먹고, 아이를 낳으면 붉은 고추나 솔가지를 거는 등이 모두 나쁜 귀신을 막기 위함이었다. 혹은 귀신의 위력에 굴복하여 춤과 노래, 공물과 음식을 접대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타협적인 방법도 사용되었다. 

 

결론

 

한국의 상례 중 하나인 '초혼'은 죽은 사람의 혼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해지던 의례다. 옛 조상들은 사람은 혼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흩어지고, 백은 땅에 묻힌다고 보았다. 이 세상에서 원 없이 무탈하게 살다 간 사람이 죽으면 밝은 양기가 하늘로 올라가 신명'이 되지만, 원한과 미련이 많아 올라가지 못한 음기는 모여서 귀신이 된다고 믿었다. 그 원한 많은 음기로 이루어진 귀신이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기 때문에 사고와 불행이 생긴다고 보았다. 따라서 나쁜 귀신을 쫓는 다양한 벽사 풍습이 있었고,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풍습 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